습작실(習作室)

빈 술병

서문섭 2024. 9. 25. 11:06

집을 나서는데

화단에 모로 누워 있는

소주병 하나를 보았다

꽃댕강나무 가지에 몸을 숨긴 채

억지 잠이라도 청한 것일까

제 몸 가눌 곳조차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그는

분명 쓰레기 봉지를 이탈했거나

제 속 훔쳐 간 누군가에 의해

버림받았을 것이다

한 번쯤,

어느 심장에 강하게 박혔을

그러다 헐렁해진 마음에서 뽑혔을

생각은 깊고 가슴은 뜨겁다

홀로 설 수 없는 땅바닥에서

노숙자처럼 달빛 포개고 누웠다

알 수 없는 저것의 행방

빈 껍데기의 설움을 아는가

제 갈 길 찾지 못한 술병 하나

중얼거리는 소리 알 듯 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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