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시(人生詩) 40

눈 雪은 내리고/

나 네발 가진 짐승 되어흰 눈 뒹군 설원에 함께 뒹굴고 싶다눈빛 맑은 사슴이나 노루 새끼라면풍경 또한 얼마나 순할까잿빛 하늘이 감싸 안으니얼마나 포근할까남겨져도 지워져도 좋을 발자국몇 개쯤 흔적으로 남아도 좋겠다모든 것 지워진 세상처음부터 아무것 없었다면더욱 심심할까야성에 길들여진 들개라도 불러맨발끼리 놀아볼까만나처럼 눈발이나 받아먹으며주머니 없는 것들끼리나누며 살아볼까그러다 지치면 흰 눈 가버리듯그것이 한평생이듯차창 밖 눈은 펄펄 내리고생각은 자꾸 머물며기차는 한평생을 겨우 벗어나는 중이다

빈 술병

집을 나서는데화단에 모로 누워 있는소주병 하나를 보았다꽃댕강나무 가지에 몸을 숨긴 채억지 잠이라도 청한 것일까제 몸 가눌 곳조차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그는분명 쓰레기 봉지를 이탈했거나제 속 훔쳐 간 누군가에 의해버림받았을 것이다한 번쯤, 어느 심장에 강하게 박혔을그러다 헐렁해진 마음에서 뽑혔을생각은 깊고 가슴은 뜨겁다홀로 설 수 없는 땅바닥에서노숙자처럼 달빛 포개고 있다알 수 없는 당신의 행방빈 껍데기의 설움 아는가제 갈 길 찾지 못한 술병 하나중얼거리는 소리 알 듯 말 듯하다

남은 세월

푸른 잎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고 예쁜 꽃도 언젠가는 시들어 버린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 없듯이 오늘 하루의 날도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명예나 권세도 세월 따라 덧없이 사라진다 우리에게 무엇이 안타깝다고 무슨 미련이 남을 손가 누구나 그리하듯이 세월이 흐를수록 곁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나가고 남은 사람들마저 세상과 점점 격리되어 가는데 이별이 점점 많아져 가는 고적한 인생길에 안부라도 서로 전하며 마음 함께하는 동행자로 고독하지 않고 외롭잖은 쓸쓸함이 없는 생이 대안이리라 세월 앞에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으니 풍성하고 넉넉한 활력적인 활동이 있어야 할까

사람의 마음

흐르는 물은흐르기 싫어도 흐르고협곡을 굽이굽이 지난 뒤강가에 다다른다잠시 여유를 부리던 물은물보라도 일으키며 떨어지고바다에 도달해 파도를 만나지, 사람의 추한 마음도 열려야 하고상처와 아픔이 흘러가야 한다심적心的 상처와 아픔의 고통은공기처럼 소중하여서고통을 당한 만큼 삶이 깊어지고성장한 만큼 삶이 풍성해지는 게유유히 편안해질 것이다 생의 깊이가 이러하듯상처의 아픔과 고통이 따를지라도인내하고 이겨내는 것이우리의 행복을 위한참다운 삶이 되는 것을

나그네길에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얻는 것을 좋아하고 잃는 것은 싫어한다 잃은 것도 있어야 때로는 얻을 것이 있으니 나그넷길에 너무 자신을 아끼지 말자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비슷한 사람을 만나라 도움이 안 된 이를 만날 바엔 차라리 혼자 가는 길이 옳으니 다만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 사람의 허물을 보지 말고 남의 일에 간섭도 마라 다만,,, 내 자신이 저지른 허물과 게으름을 볼일이다

노년의 길

어디쯤 왔을까 가던 길 잠시 멈추고 뒤돌아보니 걸어온 길 잘 모르듯이 갈 길도 알 수가 없구나 살아오며 삶을 사랑했을까 지금도 삶을 사랑하고 있을까 어느 자리 어느 모임에서 내세울 번듯한 명함 하나 없는 노년이 되었나 보구나 붙잡고 싶었던 그리움의 순간들 매달리고 싶었던 욕망의 시간도 겨울 문턱에 서서 모두가 놓치고 싶지 않은 추억들이지 이제는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가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말고 살자 아쉬움도 미련도 그리움으로 간직하고 노년이 맞이하는 겨울 앞에서 그저 오늘이 있으니 내일을 그렇게 믿고 가자 어디쯤 왔는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년의 길 오늘은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그냥 살다보면 세월이 무심코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무심코 살다 보면 꼭 노년의 겨울이 되어서야 깨닫게 하..

천천히 가요

급할 것 무엇이 있다고 그리 바쁜 걸음 재촉이나요. 세상은 늘 나보다 빠르게 흐르고 그 세월에 맞추어 내 마음도 성난 파도 마냥 웃음기 없는 얼굴로 인생을 살아가기 바쁘죠. 그러다 보면 다치고 상처 받고 넘어지는 것은 나 자신 밖에 없어요. 때로는 치타 같은 빠른 인생도 필요하지만 또 때로는 거북이 같은 느린 인생도 필요하지요. 그러니 우리 가는 길 위에 잠시라도 쉬어 갈 수 있는 인생의자 하나 곁에 두고 지치고 힘이 들 때 앉았다가 쉬어 가자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