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을(카르페 디엠) 73

염색하는 날

염색하는 날 4집 허운데기 풀고 헤진 옷 한 벌 걸쳤다 뾰족한 대꼬챙이 같은 칼칼한 성질머리 다 죽이고 어쩔 수 없이 맡겨놓은 자존심 힘든 굴레 참아내며 낱낱의 푸념 미련 없이 내려놓았다 바라보는 명경明鏡에 내 모습 비춰보니 파뿌리도 못된 쑥대강이가 물끄러미 나를 꿰뚫어본다 "당신 누구요" 라고 물었더니 그가 나에게 되묻는다 "그런 당신은 누구요"

대변항

자망 벗지 못한 멸치 떼 허공으로 솟구쳐 파닥인다 살점 터지고 목 꺾인 주검 터는 어부들의 후리소리 마스트 도는 갈매기가 슬퍼하드시 슬픈 곡소리 낸다 삶도 죽음도 힘겨운 겨루기 바다 깊숙한 구릿빛 얼굴에서 하루의 투쟁 피범벅으로 염장 된다 애절한 곡소리 내지 않고 후이후이 털 수는 없을까 그물코에 걸려 돌아가지 못한 애석한 슬픔 대변항은 오늘도 진종일 은빛으로 피어난다

생일 날 아침에

어머니의 성스런 몸에서 세상에 태어나던 날 우렁찬 울음소리 내드라구요 지금에야 나는 잎도 피었고 꽃도 피었지만 아직 더 피워야할 것이 그리 또 많은지 빈 들녘 바람 스치는 열매 없는 나무로 무성할 뿐 무심히 지나쳐버린 세월 탓에 두상에는 온 백 서려 있고 기뭄에 갈라터진 논바닥처럼 몸뚱어리에 주름은 늘어갑니다 머리칼 하얗게 바래지는 저물녘 이르는 강가에서 너울성 물보라가 활개 치는 은폐된 공간 깊숙이 들어와 중얼중얼 혼잣말로 지나버린 세월을 되내입니다

공무도하가

뿌리가 드러나도록물보라에 휩쓸린 모래밭수양 버드나무 잔뿌리가강의 말에 귀 기울인다 "임이여,물을 건너지 마오임이여 왜 내 말을 듣지 않으오저 물에 빠져 숨 진 내 낭군이 일을 어이할꼬 물속에 잠긴 몸 찾을 길 없네애절한 공무의 노래 버들눈썹 유미라하고가지는 유요라 할까 바람 이는 곳물보라 치는 강가에서오늘도 하릴없이나 종일토록 흔들려여 하는가

백설을 이다

백설을 이다 냉기가 뺨을 할퀴어 눈目에서는 눈물이 고이고 또 한 해의 겨울은 흐릿흐릿 지나가는데 막막하고 답답한 심정으로 무아지경 하늘만 바라다 본다 서릿발 그치지 않고 흐느끼는 칼바람 살갗 부딪치는 어쩔 수 없는 가벼움의 비애 안타까운 세월 헐렁헐렁하게도 고립 피해 시들어야 했겠다만 우리가 가야할 길은 스스로 알아서 찾아야할 일 알아서 칮을 일이다 그나마 살아있는 만큼의 행복이던대 지난 밤 어느 뉘 메마른 가지에다 쉬,~ 새하얀 꽃 피워 놓앗을꼬

고향서정

허옇게 불은 젖통을 짜듯질컥거림이 어머니 젖통이다아지랑이 바위도듬도 비경어찌 이것에 만족하다 할런지어린 시절 한으로 맘 달랬고 가난과 무지렁이로 살았다비록 가난하였지만남들과 비교된 삶을 살면서도천둥벌거숭이였으며승부욕의 끈은 쥐고 있었다 무수한 연단과 숱한 시련에도지리하도록 기다렸던 긴 인내이제 막 열매로 익어결실을 거두려나 보다덜 익은 교만함에겸손하지 못한 자괴감도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