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사화
내 사람아 내일이면 죽어도 좋으리
불갑산 상사화피는 평원에 가보아라
그 찬란한 가을의 교향악이 펼쳐지는
담홍빛 정원으로 가서
하늘 향해 치솟는 상사초를 찾거라
한 마리 뿔 높은 어여쁜 사슴이 아니어도
순 하디 순한 산 노루 눈빛으로
휘황찬란한 눈부신 평원을 보거라
찬탄과 갈채로 일어서는
먼 우주의 객석에서
환호성으로 맞이하던 감동의 그날은
일생에서 더딘 막차처럼
좀처럼 찾아 오지 않았다
이 눈부신 화해의 손짓들 앞에서
누가 누구를 탓하고 미워하며
서로 용서 못할 이유 무엇이 있으랴
산길 에두른 하늘 재
불갑의 성역으로 가는 길
무엇이 이토록 생의 환희로 들뜨게 하고
아리도록 가슴 저리게 하는지
그 곳에 가보고서야 말하리
끝없이 펼쳐진 상사화 피는 평원에서
마음에 욕되고 삿된 것들 다 버려보리라
아, 저 배반할 수 없는 꽃물결
신이시여! 나에게 필생을 부여하신다면
한 떨기 작은 꽃 같은
그 이름으로 나 살고자 하나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담홍빛 그리움으로 살고자 하나
눈매 서러운 미망
위로하듯 외로움으로 쓸쓸히 지고자 하나
그도 저도 아니라면
둥근 뿌리 바위틈 어디에라도
하잘 것 없는 막 돌멩이처럼
그 무엇으로 살고 싶지만
누가 오욕에 찌들어 힘들어하는 나를
이 신성한 곳에 버리도록 허락할까
산 아래 푸른 계곡물 속에서도
통곡처럼 가을산은 타오르고
디귿자 동백 골의 날카로운 등줄기타는
아슬아슬한 곡예사의 아리랑 릿지
수려한 청산들엔 애기단풍들이
푸른 소나무 군락들 사이에서
산꽃들로 붉게 피어나기 시작하고
다시 왔던 길 뒤돌아보며 내려서려니
그리움으로 소멸하는 너 물든 하산 길
애틋한 사랑 흔들리는 계절
법성봉, 장군봉, 연실봉의 위상 앞에서
한 아름 뜨거운 가슴 안아보며
상사화로 지고 말 안타까움이라니
네 순결하고 고결한 사랑은
허리 휘는 아품에도 울 수가 없구나
9월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