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산문시(自由, 散文詩)

능소화 (7월)

서문섭 2019. 6. 27. 12:20

교회 담벼락에 핀 능소화/서 문 섭

 

담홍빛깔의 꽃이 하늘을 향해 피어난 모습을 보며
웬 꽃 무더기라니'''
꽃을 모아다가 성전담벼락에 엉뚱하게 올려놓았을까
적게나마 다소곳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는 가지런하고 즐비한 모습에서
무명의 꽃만 보다가 내심 이끌리는 마음이 일고 시샘도 든다
봉오리가 차례대로 움 펑 움 펑 맺히며 오뉴월을 한달음에 뛰어내리더니
아마 칠팔월 한두 달 동안에도 많은 시간을 거칠 꽃이다
무대책 하게도 순해 보이는 겉모습의 담홍색 빛깔에서
어쩌면 노란 악기의 색소폰 연주가 흘러넘치는 분위기랄까
그 아래 있다 보면 속진의 때가 조금이라도 정화되는 느낌이
마치, 보고 느끼기에 따라서는
옛 고향의 초가집과 툇마루를 곰살맞게 되살려 놓은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햇빛과 달빛이 밝은 빈 뚝 언덕 위에 소나무 그림자로 드리워져서
마치 송음松陰에 보호를 받는 정갈한 꽃이라고나 할까
하늘 향해 비손이라도 하는 모양들이라서 참으로 정겹기까지 하다
휘황찬란한 햇빛과 은은한 달빛이 다종의 꽃들에게 고루 비치게 하되
어둠에 가리는 무욕의 삶을 보여주는 어느 시인(월하)의 노래가 생각난다
약간은 배려하는 꽃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저 꽃을 시로 노래했던 그 생각으로 묘사되는 것만은 무리다
그 시인은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시인이었을 거고
나는 그냥 나의 방식대로 글을 쓰는 시인일 뿐이기에 그럴까
필자도 작가라지만 보는 눈에 따라서는

느끼는 감정과 감응이 서로 다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유독 아름답다는 저만의 이유만으로
성전 대리석에 진열되어있는 꽃을 향해
혹여, 잘난 체 멋 부림을 하는 것은 아닐 런지
수 종의 꽃을 통틀어 역설적 발상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
로비에서 바라본 양쪽 계단으로 정돈이 잘된 여러 모양의 꽃들이 있다

우선 로비 앞 화단에는 메리골드라는 꽃이 많이 심겨져 있고

우측으로는 꽃베고니아도 심겨져 있다

그 외에도 팬지를 비롯하여

다종의 식물들이 화분에서 개화를 자랑스레 하고 있으나
모두가 이기적이고 욕망에 따라 나름의 미를 뽐내고 있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생김새도 다르고 꽃 모양도 다 달라서
자기네들 방식대로 자냥을 떨어 우쭐대는 것인가

아니면 혹여 옹알이하는 것은 아닌지
꽃이기에 응당 봉접을 부르는 것일 테고

수정을 시키는 저들만의 본능 앞에
아름답다는 능소화나 그렇지 못하다는 꽃의

귀비貴賤의 기준은 뭘까 제기랄,
사람의 생각일 뿐인데 그들을 보며 필자는 웃지 못해 울상?
어차피 내 자신 유명의 꽃이 못돼서 그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꽃보다 사람이 더 아름답다는 노랫말이 있 듯

애써 이 정도에 만족하자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다
꽃이 못 될 바에 차라리 나무가 되는 것은 어떻다는 생각이랴
수종의 꽃이나 능소화만 생각하고 말하면 됐지
왜 갑자기 나무 타령이냐고 묻고 싶지 않은가
나무는 다년생이고 꽃은 불과 한해살이나 몇 년생일 뿐이지
다 똑같은 식물이다 보면 이해를 구하기 수월할 것이다
허랑한 성전 뒤뜰인 주차장으로 발싸심을 해본다

지금이야 주차장으로 변했으니 말이지만
옛날에 있었던 시누죽(조릿대) 이파리와 등나무 무화과도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음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친다
시기가 맞아떨어질 때만 해도
꽃으로부터 그윽한 향기가 우리의 코끝을 행복하게 했던 등나무나
귀를 시끄럽게 하긴 하였으나  절조로운 듯한 시누죽이 있었다
성전을 건축하고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헤친 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역시 갈등葛藤 때문이 아니기를 바래본다
넝쿨은 없었다지만 등나무인들 역시 그 성미 어디에 갈까
자기만 살겠다는 배려치 못한 해코지가
어쩜 우리 인간의 오욕을 닮았다는 느낌을 주기에 그렇다
나무들 앞에 움츠려 눈치를 보게 되는 듯
시끄러우나 곧은 절개 대나무가 보고 있고
아름다우나 남을 해 하려는 등나무도 알고 있어
나 역시 시끄럽고 서걱대는 대나무 이파리나

잘난 체한 등나무가 아니었는지 자신을 뒤돌아보게 된다
너희들만 없었어도 열매를 맺을 수 있었을 텐데
뭐 이렇게 생각한 때도 있었으나 최소한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자기만 살겠다고 상대를 질식시키려 했다면
힘없는 나무나 꽃들이야말로 얼마나 힘이 들고 고통스러울까
그 앞에 움츠렸다가 돌너덜도 없는데 딴 생각을 하다가

발을 헛디뎌 벌러덩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무릇 삶에는 안팎이 있어야 하고 크든지 작든지 이쁘든지 밉든지
제값은 제대로 해야 한다는 진리가 있을 법하다
여느 나무나 꽃 그리고 잡초들은 수펑이에나 푸석한 자투리땅에서도
마냥 꿋꿋한 모습으로 서 있을지언정
언젠가는 토실토실한 속 붉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느냐
기대와 실망이 섞인 볼거리와 안타까움도 가져보게 한다
고즈넉한 담벼락 한 켠에서 능소화가 아름답게 만발을 하여도
꽃송이는 더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며 피고 지고를 거듭할 것이다
꽃 한 송이 피워내지 못한 가련한 꽃나무가 없을 런지
내가 그런 나무라면 바로 무화과나무가 어울림인 셈이다
주저앉은 곳에서 벌떡 일어나려 애를 쓰고 있으나
그때 적 무화과나무 두 그루가 연민의 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많은 꽃의 시선에 되레 상처만 받고 있지 않은지
꽃 없이 속으로 결실을 이루나 아름답지 못해 볼품이 없다면서
소외시키고 상처 주는 자기들만의 우월감으로
뒤에서 눈을 가리고 코와 입을 틀어막는 행태들이야말로
어찌 아름답다 폼을 내는 저 능소화꽃과 다르다 할 수 있을까
진정 손발과 귀를 칭칭 묶고 막아버렸던 그때

그 시끄러운 대나무와 등나무도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도
어차피 시간 앞에선 표연히 지나는 게 순리라면
빈약한 생이 잠간暫間이면 넉넉함 역시 잠간이라 말하고 싶다
오란비 퍼붓고 바람이 불어오게 되면
연약한 꽃들은 허망하게 쓰러져 토사에 묻혀버릴 것이다
능소화 마냥 아름답지는 못 하드래도

알아주지 않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라면 영원히 영원히,
잠시든 언제이든,
내 마음에 든든히 서 있을 것으로 보여지는 바라
성전을 에두른 산재한 꽃들이

달고 상큼한 열매를 얼마나 맺히게 될까
가을이 깊어지면 열매가 익는 법이다
꽃에 걸맞은 이름으로 많은 열매를 맺을 수만 있다면
우리 주위는 어떤 볼품 없는 꽃이라 하드래도
결코 주눅이 들지 않는 아름다운 결실이 있을 것이라 본다
"담홍빛의 꽃이 하늘을 향해 피어난 모습을 보며"


20116~7
무평;서 문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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