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시(人生詩)

팥죽

서문섭 2022. 4. 13. 11:16

땅거미 내리고

연기 자욱한 집안에 들어서면

활활 타는 불꽃이

저녁꺼리 채우려는

허기진 솥단지를 데우며

애벌방아 벗겨진 속살

바람에 힘들었을 나잇살에

허리치마끈을 야무지게 묶는다

 

막 찧어놓은 햅 밀가루

마지막까지 시달렸을

바람을 게워내며

차지디 찰진 밀반죽을 치대고

알알이 영글었던

빨간 팥물이 녹아내린다

 

배롱나무 담벼락 너머

이웃으로 나누는 인정

서리꾼들의 몫으로

장독 위에 퍼 놓으면

 

거미 한 마리 꽁무니로

집을 보수하고 꾸미는데

나비 한 마리가 그 위를

아슬아슬 넘어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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