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 내리고
연기 자욱한 집안에 들어서면
활활 타는 불꽃이
저녁꺼리 채우려는
허기진 솥단지를 데우며
애벌방아 벗겨진 속살
바람에 힘들었을 나잇살에
허리치마끈을 야무지게 묶는다
막 찧어놓은 햅 밀가루
마지막까지 시달렸을
바람을 게워내며
차지디 찰진 밀반죽을 치대고
알알이 영글었던
빨간 팥물이 녹아내린다
배롱나무 담벼락 너머
이웃으로 나누는 인정
서리꾼들의 몫으로
장독 위에 퍼 놓으면
거미 한 마리 꽁무니로
집을 보수하고 꾸미는데
나비 한 마리가 그 위를
아슬아슬 넘어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