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실(習作室)

서문섭 2022. 10. 31. 06:57

등대

 

보고 싶은 그 뉘 있어
파도 소리 들으며 섰는가
이 밤도 잠들지 못하고
험한 파도 맞고 서있는가
굽이굽이 파도 넘어
길 만드는 시광視光
물길은 끊임없이 닫히려 하고
밤이 궁창인데
그리운 사람 부르며 떠난
뱃고동 소리 일렁이고
짝 잃은 백구白鳩 한 마리
눈물 젖는 바다에서 섧다
어디선가 들리는 듯한 외침
더러는 고요한 세상 꿈꾸며
달려가는 구원의 자맥질
물결 위 열리는 하늘길에
오늘 밤은 별들이 내려와
불꽃을 피운다

 

어디론가

 

낙엽이 진 나뭇가지 사이로
넓은 호수湖水가슴을 여니
물안개 피어오르는 수연水煙이 곱다


훌쩍 가을 속으로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인다
스산한 바람
살갗 스치는 계절 속으로
나그네처럼 정처 없이
어디론가


낮은 싸리 울타리에
고추잠자리 한 마리
은빛 파닥이는 날개를 접고 있다

너도 나인 양
그런 생각 하는 건지...

 

팥죽

 

땅거미 내리고

연기 자욱한 집안에 들어서면

활활 타는 불꽃이

저녁꺼리 채우려는

허기진 솥단지를 데우며

애벌방아 벗겨진 속살

바람에 힘들었을 나잇살에

허리 치마끈을 야무지게 묶는다

막 찧어놓은 햅 밀가루

마지막까지 시달렸을

바람을 게워내며

차지디 찰진 밀반죽을 치대고

알알이 영글었던

빨간 팥물이 녹아내린다

배롱나무 담벼락 너머

이웃으로 나누는 인정

서리꾼들의 몫으로

장독 위에 퍼 놓으면

거미 한 마리 꽁무니로

집을 보수하고 꾸미는데

나비 한 마리가 그 위를

아슬아슬 넘어서 간다

 

사랑

 

그것은 그리움을 앓는 것
늘 목마른 갈증에 죽을 수 있는 것

그것은 더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것
하나 만을 소유한 가난을 기뻐하고
너만 있고 나는 없는 것

그것은
가장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
가장 하나님 닮는 것

사랑 그것은
너 하나로 차고 넘치는 것

 

산소에서

 

그곳에 찾아가면

아픈 영혼 절절한 그리움으로

모두를 반기던 따스한 모정과

통증이던 임을 오늘은 끄네

아마란스 붉은 팔월의 불꽃

구월의 구절초 같은 향기가

멀리 흩어질까 꽁꽁 동여맨 육신

통곡이 터지던 불길 속에서

마지막 뜨거운 영혼을 불러내며

지나간 흑백의 추억을

울음으로 불러본다네

태우고 더 태울 것 없는

한 줌 재로 남은 허무,

당신의 유골을 수거하는 비질은

다음 장례의 순서들로 바쁘네,

먼지 같은 생의 소멸

대단원의 결말을 유골함에 쓸어 담고

두 손 모아 엎드려 기도하며

우리는 또다시

시끄러운 세상으로 돌아가네

이윽고 돌아온 옛집엔

지친 몸 밤중처럼 밭둑에 서서

임과 마지막 헐벗은 작별을 ,

남새밭 새 푸른 빛 곁에

사각 유골함을 풀었네

깡마른 성냥개비 같은 사랑을 긋네

체취 따뜻했던 속옷에 불을 지피네

연기 꽃 자유를 놓아 주며

훨훨 날아서 가요 잘 가세요

영혼을 하늘로 날려 보내듯

당신을 조용히 끄네

긴 이별의 통곡을 끄네

 

겨울 풍경@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군불 지핀 아궁이에

고구마를 묻어놓고

꼼지락꼼지락

이불속에서 발장난 치던

어릴 적 시절이 그리워진다

소담스레 내리던 날

추녀에 말간 고드름,

알몸 된 겨울나무,

하늘 배경에 알몸 되어

어색한 미소 짓고 있었지

발 내리지 못한 여린 보리 싹

서릿발에 수석(首席)거리면

하얀 입김 호호 달래며

행여 추위에 얼까

꼭꼭 밟고 다녔던 소싯적그 옛날

산자락 배고픈 수리부엉이가

삭풍 하늘 유영을 하고

모이 쪼던 닭들은 놀라

이제나저제나 둥지 속에 숨어

놀란 눈 세상을 살폈지

댓잎 서걱대는 섣달

짧은 해는 서산에 노을 부리고

솔향 그윽한 길 따라

지 아는 어디론가

훌쩍 가버리던 날

 

매미

 

시끄럽게 울어 쌓는

매미 소리 듣는가

그칠 줄 모른 저 굉음

가만히 서 있는 나무 위

꼼짝하기 싫다는 이파리들

더위에 그만 쉬고픈데

복장 터진 병뚜껑 터지는

그런 소리 듣는가

치근거리는 저 소리

어느 때쯤 멈추어 줄까

더위 먹은 바람마저

혀가 만발이나 빠진 대낮에

짜증 나는 저 소리

떼를 지어 소리 지르는 저 치열함,

! 그래

저러듯 울고 싶은 이유는

딴마음이 있어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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