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실(習作室)

연작시

서문섭 2022. 1. 27. 13:02

1,봄을 차리세요-----------------3~4월

 

숲속 그 달디 단 꿀벌의 집
겨우내 닫혔던 육각의 창 열고
복숭아 빛 붉은 뺨
연둣빛 봄 향기 불어오면
그대 꽃무늬 앞치마 둘러
우리 모여 앉을 식탁에
햇 봄을 차리세요
봄비의 리듬을 뿌린 향료에
초록 버무릴 은쟁반을 놓고
화덕에서 지글지글 타기 전
봄을 뒤집어 익히세요
~참 그리고 포도주를 내 오세요
깨지기 쉬운 유리잔은 위험해요
핑크빛 사연을 뜨악하게
그대 앞에 엎질러도 보세요
봄 뜰엔 꽃들의 음악회가 열리고
전선줄 오선지엔 잇딴 음표
새들이 봄노랠 들려준다면 좋겠지요
노란 나비 넥을 걸고
잉잉 거리는 봄 속에 서 있을
그대 간지럼 타는 겨드랑이 쯤
떡잎보다 꽃등을 먼저 켤게요

 

2,춘화春花--------------------3~4월

 

마님은 출타중出他中,

장지문 닫아걸고

대가大家집 뒷 별당別堂

꽃샘바람 일어나면

춘색春色에 물드는 매화梅花

귀밑이 붉어진다

하게 벗은 신발짝

댓돌 위에 어지럽고

일어선 괴목槐木 하나

방안을 엿보는데

술상을 내오던 *비비扉婢

술 주병酒甁이 떨린다

 

*문을 여는 계집

 

3,상사화想思花-------8~9월

 

내 사랑하는 사람아

나의 죽음이 내일이면 어쩌리

상사화 피는 초가을 날

교향악 울려 퍼진 담홍빛 정원에서

하늘 향해 치솟는 상사화를 보노라

한 마리 뿔 높은 사슴이 아니어도

순 하디 순한 산 노루 눈빛으로

휘황찬란한 평원을 한 번쯤 보라

찬탄과 갈채로 일어서는

먼 우주의 객석에서

환호성 맞이하던 감동의 날

일생에서 더딘 막차처럼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이 눈부신 화해의 손짓 앞에서

누가 누구를 탓하고 미워하며

그 미움 풀지 못할 이유가 있으랴

산길 에두른 하늘재

불갑의 성역으로 가는 길에는

무엇이 이토록 환희로 들뜨게 하고

아리도록 가슴 저리게 하는지를

보지 않고서야 말할 이유 없으리

, 배반할 수 없는 꽃물결

끝없이 펼쳐진 상사화 평원에서

마음에 욕되고 삿된 것 버려보니라

신이시여!

나에게 필생을 부여하신다면

한 떨기 작은 꽃 같은

겸손의 꽃으로 나 살고자 하고나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담홍빛 그리움으로 살고자 하고나

그도 저도 아니라면

하잘것없는 모난 돌멩이 같은

그 무엇으로도 살고도 싶다만

누가 오욕에 찌들어 힘들어하는 나를

이 신성한 곳에 버리도록 허락할까

산 아래 푸른 계곡물도

가을 산처럼 물들어 타오르고

디귿 자 동백 골 날카로운 등줄기

아슬아슬 곡예를 하는 아리랑 릿지

수려한 청산 애기단풍이

산꽃으로 붉게 피어나는 하산 길

뒤돌아보듯 어느새 발길 돌리면

그리움 소멸하는 물들어있는 산이라

애틋한 사랑 흔들리는 계절

한 아름 뜨거운 가슴 안지 못하고

상사화로 지고 말 안타까움아

상사초의 사랑 너 상사화야

네 앞에선 어찌 내 울 수 있으랴

 

5,대합 굽는 여자--------------------12~1월

 

밀물 같은 어둠 깔리고
등대 불빛 환한
골목길 들어서면
파르스름한 불꽃이
밤의 절정 건너가는
연탄화덕에 석쇠를 올리고
파도가 감았다 풀어놓은
햇미역 같은,
간물 흐르는 여자들
혀를 깨문 조개를 굽는다
갯내 짭조름한 나잇살만큼이나
갑옷의 나이테 여물게두르고
막 빠져나온 개펄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머금었을
뻘물을 게워내며
몸 팔려왔을 포장집에서
비밀스러운 뚜께머리에
고요한 침묵의 외침은
꼭 다물었던 속살이
~억 하품처럼 벌어지자
뜨겁게 파닥거리는 욕망
썰물의 바다소리 듣는다

 

6,꽃----------------------------4~5월

 

세상 살맛이 나겠어
네가 없다면 말이야
격정과 격랑을 고운 품에 안아주면

윤기 넘치는 부드러운 수염이 돋아나지
그 가슴에 젖지 않을 *쥐뿔이 있겠어
온통 가슴 짓누르는 황홀한 자태
존재 자체로만 의미가 있는
마음을 앗아가는

젖은 원 투 쓰리 포 피스

그 보드라운 살결
사람이 이처럼 아름다울까
과연 그럴까
가슴에 숨겨진 첫사랑이
이토록 아름답게 젖어 있을까
타락한 천사가 별똥과 함께 떨어져
속옷을 벗어 놓고 유혹하는

저기저 황홀한 자태

스토옵

 

*쥐의 불알

 

7,분홍빛 고마리-----------------------------------8~9월

 

바람의 들길을 가다
길이 끝나는
도톰한 귓밥 같은 여느 쯤
꽃이라기엔 하잖은 풀꽃
눈여겨보는 이 없는
한 고봉 쌀밥이라니


고마리 문패 걸린
꽃집에 쏙 들고 싶네
애써 둥지 짓지 않아도
어눌한 향기 던지는
그 기꺼운 들 집


너털웃음 호탕하게,,,

허허어엉

괴석이나 들여놓고
괴목 같은 시나 쓰며
살고지고
살고 싶네

 

8,신시가지 사찰에서

 

장산 구비구비 타고 오는
한낮의 신도시 독경소리,
세속을 떠나 삭발을 하고
불가에 든 젊은 스님이

도량 지대방 댓돌 위에
흰 고무신 벗어두고 운다
붉게 우는 늦겨을
색소폰 소리 뚝 뚝 지거든
신발 하나 들여 두면
그냥 그만인 것을
무명의 승복 여미며
홀로 흘러든 빈방에
뚝뚝 낙엽 비 스치는 듯
천년 살아 만년을 두고
신도시 시장에 늙어버릴
하얀 낮달이 와서 묻는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무시로 숨어

산새처럼

왜 우는가 말이다

 

9,오수

 

별빛을 살라 머리에 두르고

침대에 대자로 뻐드러져
한세상 맛있게 잠이 들었네
꿈도 잊고 현실도 함께 누웠네
나른한 세월은 푸드덕거리며
창공으로 비상했고
나의 몸은 허공을 가로질러
한 세기를 뛰어넘더니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네

! 개운한 이 맛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해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게 되었네
오늘을 위해 다시 뛰어야지


씽씽 고고

 

10,단절

 

한 건물에 많은 방이 있으나
문이 연결되어있지 않는다면
그거야 별개의 존재다
인격 감정 성격 코드가 맞지 않으면

한방을 쓰나 중창이나 합창을 하기 어렵다
친구 가족 이웃이 낯설게 느껴지고
이방인처럼 보인다면
깜빡이 넣지 않고 차선을 바꾸는 거지
황당한 일 겪고 정글에서 사라진
비단 동물들의 스토리일까


장난이 아니다
감정
쉽게 치유되는 것도 아니다
단절 인격인으로써
스스로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이다
사회와 주변 구성원을 단절하고
자기 동굴 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벗 삼아 산중이나 무인도에
초막을 짓고 신선이 된 자연인
규제 제도 질서 체면 명예 법테두리
훌러덩 벗고 혼자만의 세상에서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이
티브이에서 가끔 나온다


노아는 120년간
대홍수가 온다고 외쳤지만
가족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자신을 포함한 여덟 명만 살고
인류가 다 물에 몰살당했다
, 복음전파가 장난이 아니다
맨땅에 헤이딩이다
수년간 외쳐도 다들 귀 닫고 산다
혼자라도 살아남기 위해
단절하고 깊은 산속에 가서
배나 만들며 각종 짐승이나
키워야겠다

 

11,해운대 밤거리의 군상

 

밤거리엔 기쁜 사람들보다
슬프고 우울한 사람이 많네
아내와 다정하게 손잡고
인생의 여유를 즐기기보다
부적절한 비정상이 많아 보이네
발바닥 땀나게 일하는 사람들보다
술 먹고 방탕한 사람들이 많네
흰옷 입은 사람이 많겠지만
얼굴에 분칠한 사람이 더 많네
술과 고기 냄새가 안개처럼 자욱하네
바람이 가슴에 숭숭 구멍 내고 지나네
어둠이 있어 비틀거리기에 좋은 곳이네
공허한 마음 채울 길 없어
갈대처럼 흔들리는 것을
한 번쯤 이해하고 말고 한다네

 

12,자살

 

일등 할 게 따로지

OECD 중 한국이 일등이래
외모 지상주의
못생겨서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못생겨서 먼저 갑니다
잘생긴 너희끼리 잘살아보세요
학업 부담
공부가 밥먹여주나
씨벌 놈들아
대가리 존놈끼리 잘 해봐라
먼저간다
경제적 압박
빚지고는 못산다
돈 있으면 대우받고
돈 없으면 씨발꺼
부자 쌔끼들
니들끼리 잘 살아봐라
니기미 먼저간다
연애 실패
좆같은 놈아 그동안 즐거웠다
안 죽어 봤지만
자살하는 입장 대충 그렇다
인생 별거 있나
더불어 같이 행복하게 살다가
갈 때 가더라도
스스로 제발 끊지 마라
지옥이 안 무섭나
먼저 가지 마
스톱 스톱해

 

13, 상황윤리

 

니가 그카니 내가 그카지
상황윤리다
개혁보수는 니가 그케도
난 개안타
청춘남녀가 불장난 하다가
원치 않는 임신을 했는데
곧 바로 낙태를 하는 것이
상황윤리다
아니야 생명은 고귀하며
아이가 무슨 죄가 있어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해
혼자 낳아 키우면서 길 찾아야지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지만
가치관에 따라
좌우 희비가 엇갈린다
보수신학과 진보신학의 차이다
모든 것이 신의 주권으로 볼 때
보수신학이 옳단다
인간적 관점에서 본다면
상황윤리가 통한다
두 관점은 기찻길처럼
철로가 팽행선이다
편의주의와 인간학에서는
상황윤리를 지지한단다
보수개혁주의는
신의 뜻을 찾아 실행에 옮긴다
이 상황에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아이를 살리느냐
엄마를 살리느냐
갑론을박할 수 있다
보수개혁은 생명이 먼저며
인격과 사람이 있고
그다음에
당이 있고 보수가 있다
충성하자며 일단 죽이고 보자
기다려주자
여야 안에서 싸움은 한창이다
누구에게 표를 줘야 할지
신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선택은 내가 하지만
신께서 한다하신 말씀 앞에서
떳떳하려면 *인샬라
오직 신의 뜻을 찾아야 한다

*뜻대로 하소서 (아랍어)

 

14,짜식子息(새끼)

 

새끼여 번성하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지만
새끼들이 새끼줄처럼 새끼 쳐
그야말로 세상이 너무나 잘 돌아간다
이야기이고 말인즉슨,
태양은 은하계 새끼
지구는 태양의 새끼
달은 제 돌기하는 지구의 새끼
혼외정사婚外情事 별똥별
*살별 새끼들
사람은 아담과 이브의 새끼
어허이~허이
짐승이란 게 또 어떠하니나
양물과 *엘레지로 흘레하니
호랑이 새끼는 개호주
곰 새끼는 능소니
소 새끼는 송아지
암소뱃속 탯 송아지는 송치
말 새끼는 망아지
숫나귀와 암말 잡종은 버새
닭 새끼는 햇병아리
꿩 새끼는 꺼벙이
어허이~또 허히
물고기란 게 또 거 이상허네
수컷 하얀 정자라나 뭐라나
풀치는 갈치 새는 농어 새끼

꽝 다리는 조기 새끼
간자미는 가오리 새끼
고도리는 고등어 새끼

깔따구는 농어새끼
어허이 또 또 허이~
푸성귀 나무들은 어떠한고
홀씨 줄기 짙푸르고도 누렇고
빨간 산수강산 되고
하다못해 미물 박테리아 바이러스도
포자로 새끼 치고 퍼지고 날리니
오오, 까마득한 날 궁창이 열리고
동네 아낙 입방아 날개 달아
미움과 그리움까지도 새끼를 치겠구나
어허이 허 허 허~
하늘 섭리대로 만물이 번창 번창하기를
복 있을 진저, 새끼들 천국이여


*은하계(미리내)
*짐승의 생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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