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산문시(自由, 散文詩)

장산계곡에서

서문섭 2019. 10. 3. 10:54

손주와 함께-

 

여름은 쏟아지는 물소리로 시작이 된다

지루하고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당장이라도 시원한 계곡을 찾아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어진다

작년에는 손주녀석 땜에 여름을 찾지 못했다

쥐면 다칠까 놓으면 사라질까

나들이하기엔 손주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지금 역시도 인파에 휩싸이긴 아직 아닌것 같다

이리저리 치일 걸 생각하니 해수욕장은 엄두를 못 내다가

그래도 이제 좀 제법 뛰다닐 정도로 컸고

몸도 어느 정도 이길 줄 알며

할배할매를 옆에 두고 즐거워할 줄 아는

세상맛을 느끼는 것 같아 작정을 하듯 날을 잡고 말았다

들떠서일까 우리 손주녀석 웃는 모습에 내가 자지러진다

영특하고 영리한 이놈을 자연의 견학도 시키고

창조의 섭리를 좀 가르치려 이렇게 대리고 나왔다

뭐가 좀 이상한가?

콰콰콰 쏟아지는 물소리에 주변은 소음조차 잠겼다

실증도 나겠건만 이녀석 여전히 신나게 물장구를 친다

커다란 나무 밑에 자리를 잡았는데

시원한 마음 어느새 물속에 발을 담근 마누라

흐뭇한 표정으로 이미 마음은 유토피아다

나는 반바지를 입은 채 페트병을 들고 나섰다

계곡에 무슨 큰 고기가 있어서 다 잡아보겠다고 나서보는데

또 이 무슨 어른의 체면치례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시도를 하여 보았지만

고작해야 잡는 게 산 가재인가

아니면 산청어가 있을까 싶어 기대했는데

급한 마음에 잡는다고 또 잡는 게 송사리라니

페트병 병목을 적당히 자르고 그 속에 된장을 넣었다

그리고 자른 병목을 뒤집어씌우고

적당한 돌을 곁들어 조정을 한다

어디에 숨어 있다가 찾아온 떼들일까

병 안은 금시 초만원을 이룬다

잡은 고기땜에 여름을 만끽해 보고

잡은 그 고기는 다시 물속으로 보내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든가

흐르는 물에서 건진 수박은 어쩐지 당도가 느껴진다

물놀이를 마친 손주녀석은 배가 고팠는지

수박껍질이 오이 빛이 나도록 이빨로 갉아 먹더니만

돗자리 위에서 그만 낮잠에 빠진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시원한 음이온의 바람은

서슬퍼런 한 여름날의 뜨거운 태양아래

송송 맺힌 피로를 날려 버리기에 너무나 충분하다

우리 마누라는

지금이 무슨 20대 시절의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처럼

잠든 코골음 표정이 유난히 씩씩해 보인다

세월을 읽고 있는 주완이 할배 ㅋ ㅋ ㅋ 바로 나

살금살금 다가가서 주완이 할메 콧구멍에다

간지럼 막대로 장난을 친다

손주가 꿈속에서 그 광경을 보고 웃는다

참다못한 할배 웃음소리로 곤히 잠든 할매를 깨워버린다

붉은 태양이 저물어가니 얼굴들도 등달아 발그레 물든다

어둠이 내려도 맑은 물은 여전히 우리들의 마음으로 흐른다

우리는 어느새 이 자리를 떠나야한다

물소리와 풀벌레소리만이

남은 강변의 연가로 그렇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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