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태양
한밤중 창밖은 어둠의 휘장에 덮여
비밀스런 신경조직으로 밀어를 나눈다
전설처럼 깜빡이는
저 멀리 알 수 없는 작은 불빛들은
가슴 조이며 누군가를 찾아 헤매고
맹인의 손처럼 가만가만 더듬는데
풀 수 없는 암호들이 달라붙어
내게 씨름을 걸어온다
어디선가 조금씩 새어든 빛줄기가
어디쯤인지 나의 좌표만 짐작될 뿐
몸은 무겁고 지쳐 더듬거릴 때쯤
느닷없이 다가와 열리는,
오! 당신의 시간
밝은 아침 듬뿍 안겨주는
이제야 끝나가는
나의 ‘어둠의 책’ 읽기
청산을 찾아
물어물어 청산을 찾으나
그림자만 물 위에 일렁이고 보이질 않네
허리 펴고 어디냐 여쭈니
사랑하는 사람이 청산이라 하네
한밤을 지나서 둘러보니
그 청산 간 데가 없고
불어오는 바람이 소리치네
청산은 마음에 있다고
마음 열고 푸른 하늘 푸른 땅
밤낮으로 찾았더니
하늘이 말해주네
청산은 영혼 속에 있다고,
재림再臨
예루살렘 가는 길에
돌들아 일어서라 왕이 오신다
잠잠한 자 버려두고 외치고 또 외쳐라
천지가 진동하도록
사마리아 지나는 길에
귀먹고 눈먼 자 달려오라
실로암 연못 헤매는 자도 오라
회당 옆에 다리 저는 자 말 못 하는 자
앉은뱅이도 오라 예수 오신다
밤새 신랑 기다리는 처녀들
그대들이여 잠들었느냐
어서 깨어나 등에 기름을 채워라
보라 영광스러운 임이 오신다
삶에 자치고 병든 자
배고프고 허기진 영혼들아
일어나 맞이하라
참 빛 세상의 소망 예수
우리 왕이 오신다
전쟁의 포화砲火소리 지축을 흔들고
어둠의 파도가 온 세상 덮을 때
나팔소리 들려온다 구원의 소리
무덤 열리고 잠자는 자 일어난다
나사로를 부르신 예수 우릴 부르신다
예수 예수 우리 왕 예수
여기 구름타고 오신다
상사화相思花
내 사랑하는 사람아 내일 죽어도 여한 없으리
불갑산 상사화 피는 평원을 보고 있노라
찬란한 가을의 교향악이 펼쳐지는
담홍빛 정원으로 와서
하늘 향해 치솟는 상사화를 찾거라
한 마리 뿔 높은 어여쁜 사슴이 아니어도
순 하디 순한 산 노루 눈빛으로
휘황찬란한 눈부신 평원을 바라보라 찬탄과 갈채로 일어서는 먼 우주의 객석에서
환호성으로 맞이하던 감동의 그날은
일생에서 더딘 막차처럼 좀처럼 오지를 않았다
이 눈부신 화해의 손짓 앞에서
누가 누구를 탓하고 미워하며
서로 용서 못할 이유 무엇이 있으랴
산길 에두른 하늘 재 불갑의 성역으로 가는 길
무엇이 이토록 생의 환희로 들뜨게 하고
아리도록 가슴을 저리게 하는지
그 곳을 보고서야 말하니라
끝없이 펼쳐진 상사화 피는 평원에서
마음에 욕되고 삿된 것들 다 버려보라
아, 저 배반할 수 없는 꽃물결,,,
신이시여!
나에게 필생을 부여하신다면
한 떨기 작은 꽃 같은
그 이름으로 나 살고자 하나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담홍빛 그리움으로 살고자 하오나
눈매 서러운 미망을 위로하듯
외로움으로 쓸쓸히 지고자 하나
그도 저도 아니라면
둥근 뿌리 바위틈 어디에라도
하잘 것 없는 막 돌멩이처럼
그 무엇으로도 살고 싶다만
누가 오욕에 찌들어 힘들어하는 나를
이 신성한 곳에 버리도록 허락할까
산 아래 푸른 계곡물 속에서도
통곡처럼 가을산은 타오르니
디귿자 동백 골의 날카로운 등줄기타는
아슬아슬한 곡예사의 아리랑 릿지,
수려한 청산들엔 애기단풍들이
푸른 소나무 군락들 사이에서
산꽃들로 붉게 피어나기 시작하는데
다시 왔던 길 뒤돌아보며 내려서려니
그리움으로 소멸하는 너 물든 하산 길
애틋한 사랑 흔들리는 계절에
법성봉, 장군봉, 연실봉의 위상 앞에서
한 아름 뜨거운 가슴 안아보며
상사화로 지고 말 안타까움이라
순결하고 고결한 사랑아
허리 휘는 아품에도 울 수가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