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실(習作室)

겨울 추억外

서문섭 2023. 1. 10. 20:57

미나리꽝 논둑길 아래로

살얼음이 깔리는 저녁

휘영청 달빛 비추는

샛강을 따라가다 보니

외줄기길 끝에 선

빈 오두막집 한 채가 있다

서리 맞은 국화꽃이

집안에 홀로 시들어질 적

글썽글썽

별빛들이 돋아나고

억새잎 손 흔드는

인적 드문 간이역에선

누군가가 떠나는 밤마다

잠 못 들던 기적소리를 듣는다

얼어붙던 샛강이

쩡 쩡 쩡

이슥토록 울고 있다

 

1

 

새해의 염원

 

이 아침 의연히 솟아오른

동녘 햇살에 물든 하늘과 땅처럼

님의 말씀 소망이 되어 내 가슴

갈릴리 포도주로 붉게 물들게 하소서

자신을 불태워 온 땅을 밝히듯

이천이십삼년이 다 가도록 삶도 불태워

누군가를 위해 타오르게 하소서

푸른 것은 더 푸르게

붉은 것은 더 붉게

타오른 것들은 더 뜨겁게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심장으로

시간이 흐르고 인생은 저물어 가도

추억은 나이를 먹지 않은 법

다 이루지 못한 꿈 일지라도

언제나 처음처럼

오직 그것만이 가야 할 우리의 길, 

 

구름 낀 하늘

풍랑의 바다도 두려움 없으리

 

1

 

날마다 새날

 

비바람 눈보라 속에서도

맑고 화창한 날은 돌아온다
어둠 물러간 아침은
어제가 가고 또 한 날이 시작된다
흐르는 시간 속에 근심 사라지고
슬픔도 지나간다
고통은 힘들지만
우리를 새롭게 하고 길을 연다
어제는 오늘이 아니고
오늘은 내일이 아니다
강물은 흘러가고
새 이야기 엮어가는 세월 속
태양은 날마다 유장하게 떠오르며
별은 밤마다 다르게 빛난다
순간마다 우리는
가보지 못한 역사의 길을 가고
내일을 다 알지 못한 채
꿈속 은하수에 누인다
어둠에서 태어나지 않는 생명 있으랴
차가운 흙 속에서 봄은 등불 켜고
흑암과 혼돈 속에서

지구는 이 땅에 꽃을 피운다
신비한 미지의 우주로 날아가는
날마다 오늘은 시작의 새 날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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