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러 있어도 떠나 있어도 언제나 그립고 따뜻한 고향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을 맞아
모처럼 고향 길을 찾는 발길들이 적잖게 조급하다
연휴가 길었던 예년 같았으면 이것저것 다 계획을 잡고
느긋한 마음에 들를 곳도 많았으련만
어쩐지 올해는 연휴가 사람에 따라서는 긴 이도 있겠고
반면에는 연휴가 짧은 이도 있기에
그런 사람들은 추석이란 한가함이 여유롭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유롭지 못하면 못한 대로
세월이 아쉽게도 그럴 만한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것을...
고향에 들러 고향 친지는 물론 동네 사람들을 뵙고
그 동안 쌓였던 밀담도 나누고 덕담도 하며
안부를 묻는 즐거움이 있다 할 것이나
그런 즐거움과는 달리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함이 아쉬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짧은 시간이나마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추석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도 있을 것이다
비록 잘 아는 곳이지만 고향의 근교 나들이를 다녀 보는 등
아니면 가고 오는 길에도 분명 좋은 곳은 있기 마련 아닌가
추석이란 말이 무색하게
덜 익은 곡식들이 들판에 질펀할 것이며
아직 찾아오지 않는 가을인양
둘러보면 숨어버린 듯
감춰진 가을들을 제법 많이 만나보게 될 것이다
신선한 가을바람에 요염한 허리를 흔들고
가을을 손짓하는 가을꽃들이 여기저기에서 유혹을 하며
마냥 나의 시선을 흔들어 댄다면
바로 이것이 여유라 할 것이며
한가로운 한가위가 되지 않을까 여겨지는 마음이다
맑고 아름다운 들녘에서 가을 맞는 고향의 향수와
애틋한 첫사랑의 기억이 하늘거리는 가을의 전령사들처럼
코스모스와, 닭 볏처럼 닮은 맨드라미꽃 또한 해바라기 등
온갖 꽃은 물론이거니와 갈대와 나락들이 그러하지 않으랴
고향으로 향하는 이들이라면 유년시절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고향 들길을 거닐던 아련한 추억을 되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잠시 가볼만한 낚시터를 찾는다 해도 가을은 있을 것이다
낚시터로 가는 고속도로와 주위를 에두른 레저 꽃 단지에도
이즈음 연분홍 보라 하양 등 색색의 가을꽃들이
청명한 가을바람에 가는 허리를 하늘거리며
요염한 춤사위로 가을 나들이객들을 유혹하게 될 것이다
가을 속으로 들어서면 알싸한 꽃향기와 풀벌레 오케스트라가
금방이라도 가을날의 동화 속으로 빠져들게 하지 않겠는가
시리도록 높고 푸른 가을 하늘과 하얀 조각구름...
빨간 고추짱아와 어우러진 가을꽃의 군무는
고향의 가을을 한 폭의 수채화로 옮겨 놓는 듯
보는 이의 가슴을 멎게 하기에 너무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올 추석은 비가 많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으니
환경에 맞춰 또다른 운치를 찾으면 됄 것이다
가을꽃을 따서 머리에 꽂아 단장을 하거나
불어오는 바람에 실어 한 잎 한 잎 날려 보내면
아스라한 유년의 추억이 시나브로 되살아 날 듯
그 재미가 소록소록 깊은 잠으로 빠져들게 하겠지~
소금을 뿌려놓은 것처럼 하얀 메밀꽃밭도 만나게 될 것이다
추석을 전후에는 메밀꽃이 쇠락해지는 시기여서
가을 정취를 한껏 만끽하기에는 조금은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아름다움과 설레임으로 남아
고향을 향하는 우리들에게강한 가을의 체취를 맛보게 해 줄 것이다
가을은 가을이고 한가위는 한가위다
한가위란 말은 가을 속 중심에 있다는 뜻이다
결실의 가을이라면 당연지사 먹는것을 빼 놓을 수 없으리라
더도말고 덜도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였는데
차린 음식이 부실한지 꼼꼼히 살펴 볼 생각이다
옛날 옛적에 소금 같은 삶을 사셨던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난다
차례 음식을 만들고 술을 빚던 할머니의 그 모습이
가을날에 스쳐 지나가는 주마등 사진으로 비춰진다
배고프던 옛 적에 먹었던 추석 음식 생각이 나는 게 마련이다
차례를 지낸 뒤
시원한 탕국에 온갖 나물을 넣어 비벼 먹는 밥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안다
무슨 소리냐고 말하지를 말자
나도 지금에 와서는 그 맛을 설명하여 말하거나
굳이 먹고 싶지만은 아닌 것도 같은데 적어도 그 때에는 그랬었다
다만 거기에는 할머니의 아련한 기억과
우리 민족의 깊은 음식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는 말일 뿐이다
걸다걸다 해도 그렇게 걸었을까
차려놓은 음식을 그냥 먹기에는 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우리 큰 아버지 무릎을 꿇고 축문을 외웠지,,,
``유세차(維歲次) 경인(庚寅) 추석(秋夕) 감소고우(敢昭告于)``
= 감히 경인년 추석에 밝혀 조상님께 아뢰옵니다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초 현대판의 우리가 잊고 있는
온전한 음식의 맛이 깃들어 있는 한가위 음식처럼
앞날에도 양념있는 소금의 맛으로 살아 가기를 바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