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암산에서 (5월)
4월이 지나고 5월로 들어서면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
그야말로 온통 화엄(華嚴)세계가 된다
불어오는 바람결에도 수많은 꽃향기가 들어있다
어느 꽃을 찾든지 한 곳을 찾아 나서면
다른 꽃들은 어쩔 수 없이 한 발 늦게 다다름을 느끼게 된다
오늘은 철쭉꽃을 만나러 가는 산길이다
비알이 심한 산인지라 조금은 힘이 들겠으나
꽃을 보기 위한 욕심으로 무턱대듯 길을 재촉해 본다
전남 장흥에 있는 제암산이다
산 밑에 차를 주차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아직 물 들지 않은 단풍나무와 느티나무를 비롯하여
백철쭉, 연산홍 그리고
편백나무 상수리나무들이 연달아 봄의 향연을 베풀고 있었다
시작부터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들뜬 마음이랄까!?
설레이는 마음도 잠시 초입에서 부터 되고도 가쁜 숨소리는
오르려는 발길을 무척 무겁게 만든다
더운 날씨땜에 계곡 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나무 그늘에서 잠시동안 앉아 쉬어가기를 여러 번
언제 철쭉나무들이 환하게 꽃마중을 나오려나 하며
한 시간 정도를 올라가니
능선이 온통 진홍빛 꽃물결로 이랑을 만들어 놓았다
만개한 꽃들은 나무의 약 40%정도 밖에 안 되지만
그런대로 무더기무더기 피어있는 모습들이 목가적이랄까
내가 처음으로 제암산 철쭉을 보러 왔는데 천국 같은 분위기다
누구라도 이 진홍빛 속을 취하며 걷게 된다면
기쁘게 해주고 싶은 얼굴이 생각날 거다
오르는 길에 안내 표지판을 보게 되는데
우측으로 가면 요강바위와 철쭉공원이 있다는 화살표시와
철쭉평원과 곰제로 향한다는 좌측의 화살표시가 새워져 있다
이 표지판에서 다시 제암산 정상을 향해 가는 거리는 2.0km며
사자산 쪽으로는 2.2km다
장흥에는 일림산과 사자산 또한 제암산이 있는데
이 세 산에 군락을 이룬 철쭉 평원이 약 60만평이나 된다고 한다
넘어진 참나무 한 그루가 오르는 길을 방해하고
길 중앙에는 또 한 큰 바위가 버티어 서 있으나
이를 피하며 오르자니 상당한 불편함이 뒤따른다
왜 이들을 치우거나 다듬지 않고 그대로 두었을까
모든것을 자연이 하는대로 그냥 두고 보자는 마음에선가 보다
갑자기 어디로선가 독특한 향기가 나를 흥미롭게 하나
무슨 꽃향기인지 오르는 길 동안은 기미를 찾을 수 없었다
정상에 오르고 어느새 시원한 바람이 불어 꽃 향이 난만하다
배웅해 주던 저 향기는 어쩌자고 여기까지 따라 왔을까
그 때에 누군가가 이렇게 소리친다
"야~ 이, 더덕냄새! 와~ 이 황홀한 내음! "
이렇게 소리치지 않은가,,,
그랬구나 그렇구나 그랬어~
이제서야 그 향기에 대한 정체를 알고가는 시점이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니
구릉을 이룬 철쭉군락 흐름이 사방 막힘이 없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길다랗게 이어지는 철쭉꽃길 주변으로는
이미 피어있는 철쭉꽃과 이파리들이
마치 손사랫짓이나 해주고 가라는 듯 바람에 흔들거린다
화엄늪은 끈끈이주걱 이삭귀개등 희귀식물과
두릅나무를 비롯한 취나물 고사리등
여러 식물들이 자연 생태 그대로 살아있는 곳이라 하겠다
철쭉은 한자로 풀이를 하면 머뭇거린다는 뜻이다
철쭉꽃에 홀랑 반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꽃을 바라보게 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옛 기록에는 양(羊)척촉 이라고도 쓰는데
철쭉꽃에 독성이 있으므로 양이 이 꽃을 보면
가까이 가지 않고 머뭇거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어렸을 때 산에 가서 나무를 하며 꽃을 따다 보면
감촉이 매끄러운 진달래 꽃잎과는 달리
철쭉꽃은 손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점액이 있어서 싫었다
그래서 개꽃이라 생각을 했는데
그게 지금 생각을 해보니 철쭉의 생존전략인 샘이다
봄 깊숙이 들어오는 5월이 되면 벌레들도 꽃에 많이 모여든다
수분에 필요한 벌과 나비는 꽃잎에 앉고
벌레들은 모두 점액에 닿아 꼼짝을 못하게 되니
점액이야말로 자신을 지켜주는 방어책인가 라는 생각을 갖게한다
사람의 생각으로 참꽃이니 개꽃이니 하여 차별을 두기도 하지만
나무는 자기 삶을 충실히 살아갈 뿐이다
그것을 사람들의 삶에도 적용시켜 볼 필요가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다른 사람을
함부로 자기 잣대로 판단하고 오해하지 않으려면
생각이나 마음을 활짝 열어둘 수 있어야겠다
철쭉으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이곳 제암산은
구원의 혈흔을 띠어 뿌려 놓은 것 같은 핏빛으로
나에게 에덴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2010년 5월
전남 장흥 제암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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