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어느 날 늙은 목련 나무 밑에 앉아겹겹이 포개 입은 꽃으로 들어간다아는지 모르는지세상을 들어 올리는 목련꽃힘에 부친 탓일까손에 쥔 치맛자락 휘청달갑지 않은 황사 탓에 얼룩진 꽃잎들너덜너덜 찢어진 치마처럼 훌훌 벗는다차마 어찌할 수 없는 일거무죽죽한 살갗들,땅바닥 뒹굴다 여기저기 버려진 분신들 오! 눈부신 때도 잠깐봄날도 순간병상에 누어 빤히 올려다보시던구순 엄마도 그랬다서둘러 발길 돌리는 길목애 터지게 봄비가 울어 쌓는다 목화(木花 詩) 2024.04.22
눈 雪은 내리고/ 나 네발 가진 짐승 되어흰 눈 뒹군 설원에 함께 뒹굴고 싶다눈빛 맑은 사슴이나 노루 새끼라면풍경 또한 얼마나 순할까잿빛 하늘이 감싸 안으니얼마나 포근할까남겨져도 지워져도 좋을 발자국몇 개쯤 흔적으로 남아도 좋겠다모든 것 지워진 세상처음부터 아무것 없었다면더욱 심심할까야성에 길들여진 들개라도 불러맨발끼리 놀아볼까만나처럼 눈발이나 받아먹으며주머니 없는 것들끼리나누며 살아볼까그러다 지치면 흰 눈 가버리듯그것이 한평생이듯차창 밖 눈은 펄펄 내리고생각은 자꾸 머물며기차는 한평생을 겨우 벗어나는 중이다 인생시(人生詩) 2024.04.08
동백/ 벌린 입 미쳐 다물지 못 한 채한세상 마감하는 꽃송이그중 유독 붉고 작은 입술 하나무어라 할 말 있다는 듯내 발길 붙잡는다허리를 굽히고 더 낮춰야들을 수 있단다 저들의 소리살만한 세상아주 잠깐 한 몸의 지체였던순간들이 절정이다나지막이 속삭여본다그 사랑스런 입그 고백 외면하지 못해모가지 꺾어다가 차에 동승을 시켰다우리에겐 쓰레기야 오호 통제라고이 일을 우짜면 좋노내밀한 마음의 소리 아무나 들을까 목화(木花 詩) 2024.04.08
목련 연가/ 요양병원 침대에 앉아 거울 엿보시던 울 엄니아들 온다는 소리 접하시고 연지를 찍으시려나창밖 자목련처럼 환하게 앉아서창문 밖 봄기운 불러 모으시네 "올 때가 되았는디차가 많이 밀리는 갑다아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냐오다가 그냥 돌아 갔으까" 그러다가 슬며시 잔 눈을 감으신다 바쁘다고 차일피일 미루다가오랜만에 찾아가 뵈오면아들 왔다 좋아하시다가또 아니 서러워 우시다가목련꽃 떨어지듯 봄은 그렇게 가버리고, "젊어서 재미있게 살어라이발도 하고 면도도 좀 해라늙으면 꾸며봐야 쪼그라든 양판때기다저 아름다운 목련도 한때지" 떠나시고 없는 자리 소리치고 불러본들다시는 볼 수 없는 주름진 얼굴봄은 우리 곁에 왔으나볼 수 없는 얼굴은 어디에서나 필까 목화(木花 詩) 2024.04.08
벚꽃/ 햇살 받치고 서 있는 벚나무 제모습에 취한 꽃잎들 가로등 밑 왁자지껄 봉접蜂蝶처럼 팔딱거리는 연한 날갯짓들이 견딜 수 없다며 꽁무니바람보다 더 흔들어 댄다 휘청거릴 때마다 온몸 흔들어 주는 벚나무 갈 길 알아버린 꽃잎들은 뛰어내리다 넘어지고 또 뛰어내리다 넘어지고 낙화암 뛰어내리던 삼천궁녀 몸짓이 저랬을까 제대로 피어내지 못한 꿈 벚나무 아래 하르르 할 때 발걸음 세워놓고 조문하듯 바라보는 사람들 취한 듯 취한 듯 바람 쪽으로 등 돌리는 벚꽃 나무 아래서 목화(木花 詩) 2024.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