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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雪은 내리고/

나 네발 가진 짐승 되어흰 눈 뒹군 설원에 함께 뒹굴고 싶다눈빛 맑은 사슴이나 노루 새끼라면풍경 또한 얼마나 순할까잿빛 하늘이 감싸 안으니얼마나 포근할까남겨져도 지워져도 좋을 발자국몇 개쯤 흔적으로 남아도 좋겠다모든 것 지워진 세상처음부터 아무것 없었다면더욱 심심할까야성에 길들여진 들개라도 불러맨발끼리 놀아볼까만나처럼 눈발이나 받아먹으며주머니 없는 것들끼리나누며 살아볼까그러다 지치면 흰 눈 가버리듯그것이 한평생이듯차창 밖 눈은 펄펄 내리고생각은 자꾸 머물며기차는 한평생을 겨우 벗어나는 중이다

동백/

벌린 입 미쳐 다물지 못 한 채한세상 마감하는 꽃송이그중 유독 붉고 작은 입술 하나무어라 할 말 있다는 듯내 발길 붙잡는다허리를 굽히고 더 낮춰야들을 수 있단다 저들의 소리살만한 세상아주 잠깐 한 몸의 지체였던순간들이 절정이다나지막이 속삭여본다그 사랑스런 입그 고백 외면하지 못해모가지 꺾어다가 차에 동승을 시켰다우리에겐 쓰레기야 오호 통제라고이 일을 우짜면 좋노내밀한 마음의 소리 아무나 들을까

목화(木花 詩) 2024.04.08

목련 연가/

요양병원 침대에 앉아 거울 엿보시던 울 엄니아들 온다는 소리 접하시고 연지를 찍으시려나창밖 자목련처럼 환하게 앉아서창문 밖 봄기운 불러 모으시네 "올 때가 되았는디차가 많이 밀리는 갑다아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냐오다가 그냥 돌아 갔으까" 그러다가 슬며시 잔 눈을 감으신다 바쁘다고 차일피일 미루다가오랜만에 찾아가 뵈오면아들 왔다 좋아하시다가또 아니 서러워 우시다가목련꽃 떨어지듯 봄은 그렇게 가버리고, "젊어서 재미있게 살어라이발도 하고 면도도 좀 해라늙으면 꾸며봐야 쪼그라든 양판때기다저 아름다운 목련도 한때지" 떠나시고 없는 자리 소리치고 불러본들다시는 볼 수 없는 주름진 얼굴봄은 우리 곁에 왔으나볼 수 없는 얼굴은 어디에서나 필까

목화(木花 詩) 2024.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