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제 5집

팥죽 쑤는 날

서문섭 2021. 1. 17. 13:31

내가 너른 그릇에

하얀 밀가루 부어 반죽을 하면

하루이야기 조근 조근 늘어놓으며

질금질금 물을 끼얹어줄

어머니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널다란 도마 위에

물기 없는 밀가루를 깔고

믿음직한 팔뚝 힘으로

방망이질 쭉쭉 밀어 늘이면

우리 마당처럼 넓어지는

팥죽 단맛들임 드는 저녁

논배미 밭뙈기가 이러하듯

미는 대로 넓어졌으면  참 좋겠다

하시며 웃음 짓던 어머니

 

내가 불을 낮추는 동안

팥물은 옅게 부르르 까라지고

솥뚜껑 열다가 그만

핫 뜨거워!  내 귀부터 잡던 울어머니

 

소금으로 간을 하고

약간의 설탕 가미하면

두마지기 땅 밀반죽처럼

크고 넓게 밀어붙이지 못하지만

긴 면발처럼 오래오래 살아보자던

팥죽 쑤는 그때적의  저녁

 

들려오는 옛 적 목소리가

환청으로 여울져 오는 듯

그날들이  그리웁고

마냥  그리워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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