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술람미
당신의 자태와 사랑은
곱게 빚은 산허리
찰랑대는 자연 속 흐르는
바람 소리 또는 웅장한 물소리
그대 숨결이 그리워 다가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술람미여
당신의 고통과 희생으로
환 환 웃음으로 세상 밝히고
당신의 애잔한 사랑이
어둠을 몰아냈어요
나의 전부인 술람미여
그대 숨결 만물 속에 있나니
해를 보고 달을 봐도
산과 강 광활한 바다를 봐도
그 속에 잔잔히 흐르고 있네요
고운 숨결,
내 사랑 술람미여
어그러진 세상 속에
빛으로 임하소서
해 오름으로 어둠을 몰아내고
그리운 달빛 나의 전부
환하게 피어나는 내 사랑
나의 숨결 나의 행복
삶의 의미
나의 술람미여
사랑 때문에
좁은 길 걸어온 김 집사네
아직까지 전셋집에 사는데,
가슴에 피눈물 나게 한 귀신
지금도 잘 산다 하더라
돈 떼먹고 도망간 그 지지배
지금도 잘 산다고 하더라
강도 사기 치고 감옥 갔다 온 머시매도
어디서 잘 산다고 하더라
입에 욕을 달고 살던 욕쟁이 할미
지금도 건강하다 하더라
가정 버리고 야반도주한 놈
새장가 가서 잘 산다 하더라
교회 잘 다니다 윤리 도덕 다 부수고
믿음 신앙 깨버린 아무개 집사
세상 물에 취해 하나님 멀리하고
여태 잘 살고 있다 하더라
실수보다 인간 존엄성 너무 커
죄보다 영혼 가치 너무 귀하여
부어주신 사랑
하늘과 바다를 덮어
하나님 형상 닮게 지은 사람들
아직도 땅에서 그들은
오래오래 잘 산다더라
단절
한 건물에 많은 방이 있으나
문이 연결되어있지 않는다면
그거야 별개의 존재다
인격 감정 성격 코드가 맞지 않으면
한방을 쓰나 중창이나 합창을 하기 어렵다
친구 가족 이웃이 낯설게 느껴지고
이방인처럼 보인다면
깜빡이 넣지 않고 차선을 바꾸는 거
황당한 일 겪고 정글에서 사라진
비단 동물들의 스토리일까
삶, 장난이 아니다
감정, 쉽게 치유되는 것도 아니다
단절 인격인으로써
스스로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이다
사회와 주변 구성원을 단절하고
자기 동굴 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벗 삼아 산중이나 무인도에
초막을 짓고 신선이 된 자연인
규제 제도 질서 체면 명예 법테두리
훌러덩 벗고 혼자만의 세상에서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이
티브이에서 가끔은 나온다
노아는 120년간
대홍수가 온다고 외쳤지만
가족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자신을 포함한 여덟 명만 살고
인류가 다 물에 몰살당했다
복음전파가 장난이 아니다
맨땅에 헤이딩이다
수년간 외쳐도 다들 귀 닫고 산다
혼자라도 살아남기 위해
단절하고 깊은 산속에 가서
배나 만들며 각종 짐승이나
키워야겠다
에덴의 동쪽
태초에 어둠이 가신 직후
반짝이는 미리내 빛 찬란한 새벽에
힛데갈 강물이 흐르고
유브라데강 곁에서
하마 큰 입 벌리고 하품할 적에
아담과 하와 활딱 벗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사랑하며
가인과 아벨을 꿈꾸었을 거다
첫닭 우는 소리에 만물이 깨어나듯
하늘은 맑고 구름 한 점 없는
고실고실한 아침이 시작되고
동쪽에 찬란한 태양 차고 오르면
모든 들 짐승들도 행복에 겨워
가지각색 울음 터뜨리며
팔짝팔짝 뛰었을 거다
비손 강에 물고기 뛰놀고
시퍼런 실과들이 풍성한 동산
꽃들은 만발하여
아담은 평강으로 충만했으리라
한쪽에 웅크린 뱀이 시기를 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었고
하와를 꼬드겨 먹기 전
에덴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어라
사탄아 물러가라
속이고 속는 세상이다
그중 가장 고약한 게 바로 자신을 속이는 경우다
이런 속임수 안에서 사람들은 거짓된 위안을 얻는다
스스로는 절대 속이지 않았다는 자기 믿음의 패턴에다
마음을 걸어둘 때라야 비로소 안심을 한다
상대가 자신을 꼬드길 때나 유혹할 때
우스갯소리로 내뱉는 말이있다
즉 다름이 아닌 "사탄아 물러가라" 라는 말이다
여기에서의 사탄은 신화에서나 동화에 나올 법한 케릭터가 아니라
바로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쏘아붙이는 지시어다
사람들이 농담한 것처럼 호출하는 존재 즉"사탄'이란 말
그러니까 허구 문학의 악마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바로 옆에서 활보하는 실체인 것이라 할 일이다
너도나도 사탄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물러가라고 하니
너 나 사탄이 되는 역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탄은 우리 곁에서 은밀하게 속삭인다
그의 말을 따라 행하라고,,,
이 달콤한 유혹에 복종하면서 맘속에 내재 된 욕망을 성취한다
그러고는 생각한다
"나는 결코 사탄의 유혹 때문이 아니라고"
내 자유의지를 따랐을 뿐이야" 라고 자신을 속인다
현대의 지성은 이러한 마음의 시스템을 일컬어
"모방욕망,이라는 개념으로 해석을 하게된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다른 사람의 외관이나 명성에 대한 선망을 보인다면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욕망하는 변화 작용으로만 형성된다는 말이다
모방욕망이 넘쳐나서 걷잡을 수 없을 지경까지 다다를 때에 폭력이 발생하고
폭력에 따른 사회적 무질서를 해소하려는 방편으로 희생양이 탄생한다는 뜻이다
희생양은 공동체의 만장일치 적 폭력이 낳은 무고한 가엾은 존재일 것이다
신화는 이 존재를 괴물로 둔갑시키지만 성서는 희생양 메커니즘으로 폭로한다
사탄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거든 당장 거울 앞으로 가라
이건 아니야,,,"라고 은밀하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릴 것이라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울릴 것이다
수양버들
가을걷이하는 채소밭 옆으로 가면
어른들이 갓 뽑아낸 무나 당근을 아이들에게 던져 주었다
우리는 무를 씹으며 수양버들 뿌리가 드러나도록
물에 쓸린 모래밭에 글자를 쓰기도 하고
냇가에 매어둔 숫소 불알도 쳐다보며 놀았다
길다란 냇가길 따라 걸으며 참게도 잡고 부무탁지도 잡았으며
여러가지 것으로 인하여 해질 때까지 놀 것들로 무궁무진했다
지금 새롭게 정비해놓은 삼락강변 공원도 그렇다
강을 따라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강둑에는 수목원처럼 갖가지 교목과 관목들이 심어져 있어
걸어가며 나무의 사계절 모습을 관찰하기에도 좋다
너른 강변 구석구석 흙길을 밟으며
습지와 갈대밭과 강을 따라 마음껏 걸을 수 있다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자전거를 타거나 인라인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야생화 재배지를 지나면 너른 갈대밭 속에 철새 탐조대가 있고
또 가다보면 빈 배가 있는 연못이 보이고
왕버들과 수양버들이 줄지어 서있는 버드나무길도 나온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저기까지만 가보고 오자
하고 혼자 떼게 된 걸음이 자꾸만 이어진다
내가 청년이었을 때 놀던 이 강변은
변하여 공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관리되고 있지만
걷다 보니 변함없는 곳도 있다
강의 수면과 경계를 이루는 수양버들길이다
소매 속에서 새들을 한꺼번에 날려 보내는
마술사 같던 날의 은사시나무는 보이지 않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강 물결을 내려다보며
하염없는 기다림의 자세를 보이는 수양버들은 여전하다
휘 늘어진 가지가 수면에 닿도록
나무들은 강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강물은 수양버들 뿌리 밑까지 부드럽게 밀려온다
강심의 물결은 강하게 흐르기도 하지만
강변에 닿는 물결무늬는
만지면 새의 가슴 털같이 보드라울 것 같다
그 평온한 물결소리...
마음을 다쳤을 때 내 속에서 이 소리를 기억해내곤 했겠다
살랑살랑 동그랗고 연한 물결이 수양버들 뿌리까지
왔다가 물러가고 다시 무심히 다가오는 소리 괜찮다 괜찮다……
그러는 소리 그 소리를 듣고 자란 그때
그곳의 냇가의 수양버들도 물소리를 닮았었을까
그때 청년의 그 곳 강가의 수양버들도 이 물소리였을까
지척의 물소리를 닮아 맺힌 데 없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가지가 부드럽다 못해 휘휘 늘어져 땅에 닿을 듯하다
바람 부는 길 따라 긴 머리카락 같은 가지가 부풀며 날린다
바람을 가장 잘 타는 나무가 수양버들이 아닐까
굵은 줄기까지도 바람길 따라 기울어져 자라났다
지나는 사람들이 밟아서 그리되었는지
밑줄기가 땅바닥에 엎드린 등처럼 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있는 모습의 나무도 보인다
사람들을 등에 태워 강을 멀리까지 보여주는 나무
그런 버드나무 모습에서
옛사람들은 나긋나긋한 여인의 몸매를 상상하였다
버들잎 같은 눈썹이라 해서 유미(柳眉)라 하고
버들가지 같은 허리라 하여 유요(柳腰)라 했을까
버드나무는 이별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중국 사람들은 이별할 때 버들가지를 꺾어 건넨다고 한다
그 당시 시에 보게되면
요사이 이별이 많아서인지
강나루 버드나무 가지가 땅에 닿는 게 적다는 뜻도 있다
수양버들의 늘어진 가지는 흐르는 눈물과도 같다
강가 수양버들 옆에 앉아보면 강 건너편이 보인다
사람은 여기 있으면 저기가 그리운 존재다
찬 바람이 불어오니 나무는 머리를 풀어 헤친 사람처럼 흔들린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기어이 건너가시다 물에 휩쓸려 죽으니
이 일을 어찌하나"
강물을 보면 공무도하가가 생각이 난다
기어이 강물을 건너가려 했으나
건너갈 수 없었던 백수광부의 마음을 붙잡으려 했으나
붙잡을 수 없었던 그 아내의 마음이 오늘도 흐른다
강 저편은 여기의 애환과 슬픔이 없을 듯
평화로운 수묵화로 서있다
새들마저 여기는 검고 오종종한 청둥오리들이 떠있고
저편 강기슭에는 흰 고니들이 그윽하게 떠있다
그러나 수양버들과 같이 밑둥치가 찬 땅바닥에 엎드려도
여기를 사는 것이 지금 우리의 삶이다
강 저편에서는 여기가 저편일 것이니
그것을 말해주려는 듯
매일 아름다운 노을은 자장가처럼 내려와
피아를 모두 금빛으로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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