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편-
내 사랑하는 사람아
나의 죽음 내일이면 어쩌리
상사화 피는 초가을 날
교향악 울려 퍼진 담홍빛 정원에서
하늘 향해 치솟는 상사화를 보노라
한 마리 뿔 높은 사슴이 아니어도
순 하디 순한 산 노루 눈빛으로
휘황찬란한 평원 한번쯤 바라보라
찬탄과 갈채로 일어서는
먼 우주의 객석에서
환호성 맞이하던 감동의 날
일생에서 더딘 막차처럼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이 눈부신 화해의 손짓 앞에서
누가 누구를 탓하고 미워하며
그 미움 풀지 못할 이유가 있으랴
산길 에두른 하늘재
불갑의 성역으로 가는 길에
무엇이 이토록 환희로 들뜨게 하고
아리도록 가슴 저리게 하는지
보지 않고서야 말 할 이유 없으리라
아, 배반할 수 없는 꽃물결
끝없이 펼쳐진 상사화 평원에서
마음에 욕되고 삿된 것 버려보리라
신이시여!
나에게 필생을 부여하신다면
한 떨기 작은 꽃 같은
겸손의 꽃으로 나 살고자 하나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담홍빛 그리움으로 살고자 하나
그도 저도 아니라면
하잘 것 없는 막돌멩이 같은
그 무엇으로도 살고 싶다만
누가 오욕에 찌들어 힘들어하는 나를
이 신성한 곳에 버리도록 허락할까
산 아래 푸른 계곡물도
가을 산처럼 물들어 타오르고
디귿자 동백 골 날카로운 등줄기에서
아슬아슬 곡예하는 아리 아리랑 릿지
수려한 청산 애기단풍이
산꽃으로 붉게 피어나는 하산 길
뒤돌아보듯 어느새 발길 돌리면
그리움 소멸하는 물들어있는 산이라
애틋한 사랑 흔들리는 계절
한 아름 뜨거운 가슴 안지 못하고
상사화로 지고 말 안타까움
상사초의 사랑 너 상사화야
네 앞에선 어찌 내 슬퍼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