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늘 다른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산 향기 맡으며 오솔길 따라 쭉 오르다 보면
길게 놓인 벤치를 보게된다
벤치에 앉아서 물들어가는 가을 낙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적 만남이 엮어지게 된다
무시무시한 산돼지가 불쑥?
바람과 덩달아 춤사위 하는 목림木林을 겁나게 쳐다본다
그나저나 뭐에 떨었든지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춥다
어찌 된 판인지 날씨가 제 주제를 모르는 것 같지 않은가
자연이란 게 그저 정해진 길을 표연히 지나가는 거라
늘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듯 살아왔는데
뭐가 그리 심사가 뒤틀렸는지
주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아 야릇한 마음이다
산속에는 우뚝우뚝 소나무가 이따금 씩 보이지만
잡목이 많아 황금빛 낙엽으로 쌓여가는 모습을 더 볼 수 있는 곳이다
하늘에서는 태양이 아낌없이 쏟아져 내려
산속은 황금이불을 덮은 듯 포근하지만
10월은 아직 여름을 숨 쉬고 있는지
시원한 바람이 간간이 숲을 흔들며 지난다
이달 들어서고도 이미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건만
여전히 다습다가도 춥고 춥다가도 서늘하고
무엇이 어떻게 돌아간 심사인지 토~옹 가늠을 못 하겠다
가을이 겨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조금은 아쉬워서일까
미련이 남은 듯 질기기가 고래 심줄이다
물론 서늘한 바람도 이따금씩 불긴 하지만
옛날 같은 가을을 생각한다면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사무실의 무미건조한 온풍 바람이 아니라
당글거리는 겨울 꽃향기를 품은 그런 바람을 맞고 싶어진다
간(間)만에 모처럼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오랜만이어설까 아니면 나이 탓일까
발걸음에 세월이 다소 뒤를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동안 많은 유적지와 명산들을 찾았지만
풍류라면 사족을 못 쓰던 필자인데
어련히 좋은 곳만 찾아다녔을꼬
"오냐! 이제 더위야 가거라 추위야 오너라
네 놈 여기까지 쫓아올 수 있는지 내 한 번 볼 테다"
산이라면 바로 바라다보이는 가까운 산
제가 옛적 몸담고 있던 회사 건너편 가덕도 산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긴 하나 산세가 좋고 물이 고아
풍류 좋아하는 산 꾼들이 많이 몰려든 산이라 하겠다
게다가 이곳은 자연을 벗 삼은 곳이기도 하다
크다고 해서 주변 경관을 해치는 요즘 건물들과는 달리
형태가 직선으로 뻗지 않고 유려한 곡선의 길이므로
곱게 단장한 길들이 멋스럽기가 그저 바깥 풍경 못지않다
갈맷길 비갈을 시작으로 하여
나무둥치를 박아 만들어 놓은 길을 지나고 나면
정자가 휴식공간인 듯 쉬어가는 공간이 아니라할 수 없다
중간중간 팻말과 나무로 만든 데크도
산행을 하도록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다
비록 작은 섬이라지만 그래도 이곳은
가덕도와 거제도를 육지로 잇는 연륙교가 개통된 곳이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인즉 슨
이 대교를 딱 네 번 가보았었는데
쭉쭉 뻗은 거가대교가 꽤 인상적이었다
눈으로 느끼고 생각했으므로 아직은 덜 익은 대상일 뿐
그래 그렇겠구나 정도일 뿐이지
개인적으론 마음에 들었던 것은 산과 길이다
앞서 산세가 좋다는 소리를 실컷 해 놓고 금방 또 딴소리다
그래도 어쩌랴
이 아름다운 곳에 절경을 칭송하고 있는데도
참으로 그런 점입가경이 아니라는 점이 이 산이라 하겠다
나름대로 아름답고 운치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연대봉에서 바라본 목하의 주변은
자연 그대로의 속에 살고 싶어 한 주민의 마음을 알 듯도 싶다
그러나 찬찬히 산세를 살펴보면
단풍색으로 일관한 모양새에서 남자들의 무뚝뚝함을
느끼기도 한다
보면 볼수록 소박하면서도 수려한
남성적인 호방함이 가슴에 와닿는 듯
세상에 나아가는 군자의 모습과도 같은 우직한 산이라고나 할까
가을이 저문 빛 그 꼬드김에 산길을 올랐더니
아직 덜 익은 만산홍엽이나마
고운 빛으로 하여금 나도 몰래 가슴속 깊이 물이 든다
대게 주종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인데
활엽수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수 또한 여러 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었을 때의 모습은 사실 최고란다
게다가 지금은 10월, 어찌 보면 중간가을이다
이곳 사람들은 대개 더위를 피해 여름에 산을 찾는다고 한다
활엽수의 이파리들이 만든 그늘 사이로 불어주는 바람은
정상에서 맞는 바람에 못지않다 말들을 한다
숲을 나와서 신항만 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굴곡진 길로 손꼽히는 연대봉을 넘기 위해서다
구절양장(九折羊腸)처럼 구불구불한 고갯길이
참으로 멋스럽다
산길을 걸으며 무수한 숲과 나무들에게 말을 걸어보면
숨 가쁜 누런 숨결과 가을의 마지막 꽃들의 향기가
온 몸속으로 파고드는 흥취 분위기다
발밑으로 바스락바스락 밟히는 낙엽의 느낌과
지저귀는 산새들의 소리, 길가로 배회하는 새의 깃털들
그리고 무시무시한 산돼지가 금방 튀어나올 것 같은
긴장감 속에 어깨 위로 툭 떨어져 내리는 도토리의 落實이
마치 대화라도 하려는 것처럼 나에게 은근히 말을 건넨다
만일 반대 방향이라면 당연히 내리막 길이다
고갯마루에 올라 내려다보면 구불구불하기가
마치 우리네 인생살이 같다는 생각도 든다
더위도 추위도 결국은 나를 이기지 못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아 온몸이 따뜻하고 시원하다
그야말로 유쾌, 상쾌, 통쾌다
목하(目下)는 이미 그야말로 백미다
신항만이 아련히 앉아있기 때문인데
바다 위에는 아산(牙山) 한 척이 떠 있다
"야호! 야호! 야호!
아산아 수입 물량은 대충 받아들이고
수출 많이많이 해서 부자 되자야~
2013년 10월 가덕도에서
시인, 수필가 서 문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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