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후기

여수 오동도에서 1 (2월)

서문섭 2019. 6. 27. 10:40

겨울 찬 공기가 소매 끝으로 묻어오게 되면

몸이 떨리고 손발은 시리며 가슴은 옥죄여 든다

앙상하게 남은 겨울 나뭇가지 위에나 설화로 뒤덮인

능선 봉우리를 보면서도

계절에 따라 바뀌는 산속의 변화무쌍으로 인한

인간의 삶 같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추어내는 것 같아

한평생 살아온 나의 삶을 되뇌이며 반추하게도 한다

날씨가 참으로 험상궂다

여느 듯 입춘이 지나 봄인가 싶었더니

보란 듯 불어오는 찬 기온에 어깨가 움츠려든다

올 듯 말 듯 오지를 않고 미적미적한 봄이 괜스레 얄밉다

애간장이 탈수록 애틋함도 함께 커지는 법

봄을 기다리는 조급증 또한 얄미운 마음만큼 커지니

조금이라도 빨리 그 봄을 맞으러 봄이 빨리 찾아온다는

남쪽으로 향할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다

전라도 땅 고흥에 있는 녹동항에서 배편을 이용하여

목적지를 찾기로 하고,

약간 우회를 하여 다소 먼 길을 감수하고라도

아버지의 산소를 먼저 찾아가 참배를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밤 11시 즈음

은근슬쩍 아무도 없는 외로운 밤을 달래며

곧장 녹동항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밤의 전주곡인 코골음의 노랫소리가

파도 소리와 함께 조화를 이뤘다고들 일행이 가르칠 무렵

하얀 아침은 꿈으로 빛났다...

한 시간여를 흘러 거문도를 찾은 것도 그런 연유다

흔히 하나의 섬으로 알고 있는 거문도는

알고 있는 바와 달리 고도, 서도, 동도의 세 섬을 아우른다

그래서 옛날에는 삼도 삼산도라 불리기도 했단다

세 개의 섬이 바다 가운데 병풍처럼 둘러쳐져

그 가운데는 천연항만을 이루니 마치 호수 같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거문도항 인근 고도와 서도를 잇는 다리 이름도 섬호교 라 한단다

처음엔 생뚱맞은 다리 이름에 고개를 갸웃뚱 거렸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을 잇는 다리 이름에 웬 호수일까?

그러나 마치 머금고 있는 물인 양

섬들 사이에 들어와 담겨있는 바다를 보면 이내 고개가 끄덕여 진다

고도의 거문도항에 내려 바삐 다리를 건넌다

거문도에서 가장 남쪽인 서도 끝자락에 위치한

거문도 등대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1905년에 처음 불을 밝힌 거문도 등대는

우리나라에서 인천 팔미도등대 다음으로 오래됐다고 한다

남으로 뻥 뚫린 절벽 위 등대에서 눈 길을 모아 바라보는

쪽빛 바다가 일품이다

날씨가 좋으면 남쪽 바다 너머로 눈 덮인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등대에 이르는 길이다

서도의 남쪽 도로 종점 부근 갯바위 지대인 목 넘어 등대까지

약 1km 남짓의 산책로는 마치 딴 세계로 통하는 꿈길 같아 보인다

길을 따라 늘어선 동백 숲이 하늘을 가리나 했더니

낮은 산허리를 옆으로 돌면 어느새 숲은 온 데 간 데도 없이

푸른 하늘만으로도 모자라 더 푸른 바다까지 내어놓는다

굽이굽이 산허리를 돌 때마다 산과 바다가 되풀이 된다

이건 예전 여느 유행어처럼 산길도 아니고 바닷길도 아니다

그 간격을 같이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감추기를 반복하는

새하얀 등대가 목가적인 느낌을 더하고 있다

때를 맞춰 바다를 둘로 가르며 유유히 지나가는 배까지 등장해준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등대를 찾아가는 길뿐이랴

등대를 둘러본 후 서둘러 발길을 돌리면

서도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 곳곳이 절경이다

유림해수욕장 뒷길을 따라 올라서 산 능선을 타고

목 너머로 내려오자

목 너머부터 시작해도 상관은 없을 것 같다

보통 사람의 걸음으로 2시간 정도 소요가 되겠다

능선에 오르면 좌우로 바다가 펼쳐진다

오른쪽 살피랴 왼쪽을 구경하랴

능선을 타고 가는 내내 고개가 아프다

섬 산행의 묘미가 여기에 있겠구나 싶다

뭍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대게 하나의 방향으로 펼쳐지지만

섬 산의 꼭대기에서는 사방이 바다다

섬 여행의 또 다른 묘미는,

섬 속에서 빠져나와 바다에서 즐기는 것이다

거문도항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고 거문도를 일주하면

섬에서 볼 수 없었던 섬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좌우지간 무슨 섬이 이리도 많을까

생각했던 것 보담은 웬 섬?

섬이 무진장하게 많다

섬들이 높고 옅은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절벽 등을 형성한다

거문도항 앞바다는 밤이 되어야 밀물이 들어와 가득 찬단다

준비된 음료수 한 잔에 갓 잡아 올린 싱싱한 갯장어 조림과 양태찌게

그리고 이것들과 밤바다의 파도 소리가 어우러진다면

이곳이 남쪽 바다의 외딴섬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겠나 싶다

겨드랑이를 스치는 남도의 밤바람이

이미 봄인 듯이 마냥 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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