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하늘에서 보내온 편지)

공동묘지

서문섭 2019. 11. 9. 11:16

 

결실 이룬 공동묘지에
세찬 바람이 일든 말든
폭우가 내리든 말든
잘났는지 못났는지
따져야 할 이유가 없다
담장 너머에 핀 장미 
아름답다는 핑계만으로
가로화단을 짓밟을
손도 없고 발도 없다
새는 시절 따라 울고
꽃은 모양 따라 만발하여
밤에도 환한 숲속처럼
정금이 까맣게 익어
칡살 굵어 먹을 것이 많다
아침 저녁
하늘이 철문처럼 열리고 닫혀도
서두르거나 두드리는 일 없어
죽은 자들이 산 되고 물이 된다
내 가정 챙기기보다
남의 이름 더 알리려 했으니
살아보겠다고 허둥대던 날들
상식이 되었는지 모른다만
이제 와 아무런 소용 없을지라도
그런 삶에 귀 대고
슬쩍 한번 귀뜀을 해 본다
잘난이나 못난이나
치열한 욕심을 미련 없이 버려도
그나마 이 몸이 죽어
저렇게 유효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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