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햇볕이 따사롭게 도드라지는 요즈음 물오른 나무에는 가을이 되어 잎이 질 때부터 눈에 들어오던 겨울 눈目들이 더 도톰하게 자라고 있었다 거뭇한 작대기로 서 있던 나뭇가지에서 어느 봄날 순백의 꽃잎이 펼쳐지고 나면 아니 벌써 이렇게 됐나 기적이라며 깜짝 놀라는 봄날을 맞는다 그렇게 만나는 봄꽃과 새싹들은 금방금방 앞다툼을 한다 봄 아기를 포대기에 꼬옥 보듬은 시샘의 볼록한 숨을 지켜보는 아직은 따사롭지 못한 시간만큼이나 반면 봄날은 더 가까이에 다가설 것이라 아니 이미 곁에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이 우직한 생물이 제게 부여된 조건들로 꿋꿋이 견디며 겨울을 품고 설레는 걸 보면 우리에게도 그까짓 부대끼던 오늘을 날려버리고 내일을 살아갈 행복이 돋을 것이라 여겨진다 나무들의 눈目 중에서도 겨울 꽃눈이 돋보인다 이미 도톰한 꽃봉오리 모양을 갖추고 그 위에 나뭇가지와 같은 회갈색 솜 털옷을 입었다 겨울 햇빛이 꽃눈을 감싸고 있는 솜털 위에서 빛나게 되면 그 자체로도 꽃은 영롱하고 맑은 꽃송이리라 봄이 오면 목련꽃을 보러 제일 먼저 달려가려는 곳 이미 가까운 곳에 나무가 있음을 보아두었다 뒤 산자락 아래 커다란 산 목련 몇 그루를 나는 지난해 봄 어느 날 진달래에 물들어 걷던 산을 오르던 길에서 만났다 추운 겨울을 낮게 구부려 슬레이트 지붕을 활짝 들어 올리며 목련꽃이 순전한 빛을 비추어 준다 꾸밀 것 없는 낮은 집들과 좁은 골목길에서 꼬불꼬불한 길을 고단하게 때가 낀 세상 사람을 보게 된다 장에 갔다 온 엄마처럼 목련나무는 새 옷을 입었다 가득한 빛 그 빛 아래서 머뭇머뭇 서 있다가 돌아왔다 잎이 진 각종 나무가 등에 햇살을 진 오래된 나무들도 보인다 방 한 칸 크기 될 만한 은목서에 가린 단층집 앞으로 들어가려니 개들이 왁자하게 맞는다 개 짖는 소리에 집안에서 안주인이 나온다 이곳이 원래 나무를 기르는 육묘원이라 한다 울타리로 심은 나무들이 벚나무와 산 목련과 백목련들이다 어릴 적부터 이 동네서 자랐다는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결혼하여 외지로 나갔다가 30여 년 전 남편과 함께 다시 돌아와 나무를 기르며 살아왔다고 한다 나무 한 그루가 한 사람과 같다 하시던 시아버지 말씀은 나무와 함께 살아갈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고 한다 목련이 필 즈음이면 창문 밖을 자주 쳐다본다는 그녀 꽃 핀 목련나무를 떠올리는 순간 밝은 빛을 입는다 산 목련나무는 버스 종점을 지나 안동네로 돌아가는 산 아랫길에 네 그루가 따로 서있다 나무들 가지초리가 하늘을 향하여 동그랗게 팔을 모은 생김이 꼭 기도를 올리는 것 같아 보인다 아직 겨울눈이 크지 않으나 나무와 기온차이에 따라서는 이미 피어버린 나무도 적잖다 먹을 머금은 붓끝 같다 그래서 목련은 별칭이 목필(木筆)이기도 하다 한겨울이면 도심보다 조금 더 춥다는 이곳 산동네 할머니들이 털목도리로 머리를 감싸며 추위에 몸을 구부리고서는 목련 겨울눈처럼 나무 아래를 지나간다 밤이 되어도 산동네가 환하도록 목련이 피는 날은 일 년 중 겨우 일주일 남짓밖에 안 된단다 여름부터 가을 겨울 동안 나무는 겨울눈을 오래 오래도록 품는다 진정 봄은 침묵으로부터 오는가 보다 2019년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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