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편-
가을걷이 하는 채소밭 옆으로 가면 어른들이 갓 뽑아낸 무나 당근을 아이들에게 던져주었다 우리는 무를 씹으며 수양버들 뿌리가 드러나도록 물에 쓸린 모래밭에 글자를 쓰기도 하고 냇가에 매어둔 수소 불알도 쳐다보며 놀았다 길다란 냇가길 따라 걸으며 참게도 잡고 붕어도 잡았으며 여러가지 것으로 인하여 해 질 때까지 놀 것들로 무궁무진했다 지금 새롭게 정비해놓은 삼락강변 공원도 그렇다 강을 따라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강둑에는 수목원처럼 갖가지 교목과 관목들이 심어져 있어 걸어가며 나무의 사계절 모습을 관찰하기에도 좋다 너른 강변 구석구석 흙길을 밟으며 습지와 갈대밭과 강을 따라 마음껏 걸을 수가 있다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자전거를 타거나 인라인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야생화 재배지를 지나면 너른 갈대밭 속에 철새 탐조대가 있고 또 가다보면 빈 배가 떠있는 강이 보이고 왕버들과 수양버들이 줄지어 서있는 버드나무길도 나온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저기까지만 가보고 오자 하고 혼자 떼게 된 걸음이 자꾸만 이어진다 내가 청년이었을 때 놀던 이 강변은 변하여 공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관리되는 곳이 되었지만 걷다 보니 변함이 없는 것도 있다 강의 수면과 경계를 이루는 수양버들길이다 소매 속에서 새들을 한꺼번에 날려 보내는 마술사 같던 날의 은사시나무는 보이지 않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강 물결을 내려다보며 하염없는 기다림의 자세를 보이는 수양버들은 여전하다 휘 늘어진 가지가 수면에 닿도록 나무들은 강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 강물은 수양버들 뿌리 밑까지 부드럽게 밀려온다 강심의 물결은 강하게 흐르기도 하지만 강변에 닿는 물결무늬는 만지면 새의 가슴털 같이 보드라울 것 같다 그 평온한 물결소리... 마음을 다쳤을 때 내 속에서 이 소리를 기억해내곤 했겠다 살랑 살랑 동그랗고 연한 물결이 수양버들 뿌리까지 왔다가 물러가고 다시 무심히 다가오는 소리 괜찮다 괜찮다…… 그러는 소리 그 소리를 듣고 자란 그때 그곳 냇가의 수양버들도 물소리를 닮았었을까 그때 적 청년의 그곳 강가의 수양버들도 이 물소리였을까 지척의 물소리를 닮아 맺힌 데 없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가지가 부드럽다 못해 휘휘 늘어져 땅에 닿을 듯하다 바람 부는 길 따라 긴 머리카락 같은 가지가 부풀며 날린다 바람을 가장 잘 타는 나무가 수양버들이 아닐까 굵은 줄기까지도 바람길 따라 기울어져 자라났다 지나는 사람들이 밟아서 그리 되었는지 밑줄기가 땅바닥에 엎드린 등처럼 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있는 모습의 나무도 보인다 사람들을 등에 태워 강을 멀리까지 보여주는 나무 그런 버드나무 모습에서 옛사람들은 나긋나긋한 여인의 몸매를 상상하였으리라 버들잎 같은 눈썹이라 해서 유미(柳眉)라 하고 버들가지 같은 허리라 하여 유요(柳腰)라 했을까 버드나무는 이별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중국 사람들은 이별을 할 때 버들가지를 꺾어 건넸다고 한다 그 당시 시에 보면 요사이 이별이 많아 강나루 버드나무 가지가 땅에 닿는 게 적다는 것도 있다 수양버들의 늘어진 가지는 흐르는 눈물과도 같다 강가 수양버들 옆에 앉아보면 강 건너편이 보인다 사람은 여기 있으면 저기가 그리운 존재다 찬바람이 불어오니 나무는 머리를 풀어헤친 사람처럼 흔들린다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님은 기어이 건너가시다 물에 휩쓸려 죽으니 이 일을 어찌하나 강물을 보면 공무도하가가 생각난다 기어이 강물을 건너가려 했으나 건너갈 수 없었던 백수광부의 마음을 붙잡으려 했을까 붙잡을 수 없었던 그 아내의 마음이 오늘도 흐른다 강 저편은 여기의 애환과 슬픔이 없을 듯 평화로운 수묵화로 서있다 새들마저 검고 오종종한 청둥오리들이 떠있고 저편 강기슭에는 흰 고니들이 그윽하게 떠있다 그러나 수양버들과 같이 밑둥치가 찬 땅바닥에 엎드려도 여기를 사는 것이 지금 우리의 삶이다 강 저편에서는 여기가 저편일 것이니 그것을 말해주려는 듯 매일 아름다운 노을은 자장가처럼 내려와 이쪽과 저쪽을 모두 금빛으로 감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