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산문시(自由, 散文詩)

부활 신앙

서문섭 2022. 4. 8. 10:28

 

세상에 살다가 나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

참 무서운 사람입니다

가롯유다가 그 엄청난 일을 저질러 놓고도

나 죽으면 그만이라는 태도로 목매달아 죽었습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끝이 났습니까

심문은 계속되었고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억울한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처형되었습니다

또 무서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  아우만 죽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

바로 가인입니다

저 아우 때문에 내 예배가 상달되지 못하다니

차라리 아우를 죽여버리면 끝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이 달라졌으며 좋아졌습니까

상대방이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을 했겠지요

성경은 그 피가 소리 지른다고 말씀합니다

사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만 죽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큰 불행을 자초 했습니다

죽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죽인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이 없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활 신앙이 없이는 아무 능력도 없습니다

죽음이 끝인데 선하게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내세가 없다면 뼈아픈 인내와 수고가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부활 신앙과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이는

모든 가치가 무너져 내린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위기가 닥칠 때

그 믿음은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달라졌습니다

확고한 부활 신앙 위에 내 인생을 건설해야

힘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생명의 가치를 알아야 할 이유인 즉슨

부활절이 다가오면 계란을 삶아 먹습니다

그 유래라면 분명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부활절 때 여느 목사님이 설교하신 대목이 기억납니다

말씀인 즉슨,

유럽 프랑스와 영국이 100년 전쟁을 벌일 때

군인인 애인이 전사했다는 소문을 듣고

실감하지 못하던 여인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지 않았고 살아있음을 애써 믿으며

애인을 찾아 전쟁터를 전전한 일일 때라 합니다

그러던 중,

전쟁으로 고아가 된 배고픈 아이들에게

먹거리로 계란을 삶아 먹였다는 봉사정신이

오늘날까지 교회 부활절 절기에 맞춰 유래가 되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계란에도 유정란과 무정란이 있습니다

무정란은 생명의 씨가 없고

유정란은 생명의 씨가 있다는 것은 그 누구나 다 압니다

생명도 각기 차원이 다릅니다

식물이 다르고 동물이 다르며 사람이 다릅니다

차원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차원 높은 생명이 곧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요 원천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바로 이 생명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 수많은 순교자의 용기가

바로 이 생명의 부활 신앙에 근거한 용기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생명의 능력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일으키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부활의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그 부활에 참여하는 자 되면

하나님의 능력을 나의 능력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 부활에 참여하려면 어떠한 고난에도 참여하여야 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의 능력을 나의 능력으로 소유하려면

십자가의 고난에 먼저 참여해야 합니다

오늘이 있어서 내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이 있기에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는 것입니다

죽음이 있어서 부활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이 있기에 죽음도 의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부활 신앙으로 승리하고 부활 신앙으로 용기를 얻고

부활 신앙으로 십자가를 지는 아름다운 신앙인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東峴敎會 按手執事 徐文燮

 

2, 부활 신앙(수정)

 

세상에 살다가 나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

참 무서운 사람입니다

 

가롯유다가 그 엄청난 일을 저질러 놓고도

나 죽으면 그만이라는 태도로 목매달아 죽었습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끝이 났습니까

심문은 계속되었고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억울한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처형되었습니다

 

또 무서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 아우만 죽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

바로 가인입니다

저 아우 때문에 내가 드리는 예배가 상달되지 못하다니

차라리 아우를 죽여버리면 끝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이 달라졌으며 좋아졌습니까

상대방이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을 했겠지요

성경은 그 피가 소리 지른다고 말씀합니다

 

사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만 죽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큰 불행을 자초 했습니다

 

죽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죽인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이 없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활 신앙이 없이는 아무 능력도 없습니다

죽음이 끝인데 선하게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내세가 없는데 뼈아픈 인내와 수고가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부활 신앙과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이는

모든 가치가 무너져 내린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며 따랐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위기가 닥칠 때

그 믿음은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달라졌습니다

확고한 부활 신앙 위에 내 인생을 건설해야 

힘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생명의 가치를 알아야 할 이유인 즉슨

부활절이 다가오면 계란을 삶아 먹습니다

그 유래라면 분명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말씀인 즉슨,

유럽 프, 영 100년 전쟁을 벌일 때

한 여인은 군대에 간 애인이 전사했다는 소문을 듣고

실감하지 못하던 터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지 않았고 살아있음을 애써 믿으며

애인을 찾아 전쟁터를 전전한 일일 때라 합니다

 

그러던 중,

전쟁으로 고아가 된 배고픈 아이들에게

먹거리로 계란을 삶아 먹였다는 봉사 정신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교회 부활절 절기에 맞춰 유래가 되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계란에도 유정란과 무정란이 있습니다

무정란은 생명의 씨가 없고

유정란은 생명의 씨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생명도 각기 차원이 다릅니다

식물이 다르고 동물이 다르지만 사람은 또 다릅니다

차원이 높아집니다

이보다 더 차원 높은 생명이 곧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요 원천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비로소 이 생명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 수많은 순교자의 용기가

바로 이 생명의 부활 신앙에 근거한 용기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생명의 능력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일으키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부활의 능력은 하나님께로 부터 옵니다

우리가 그 부활에 참여하는 자 되면

하나님의 능력을 나의 능력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 부활에 참여하려면 어떠한 고난에도 참여하여야 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의 능력을 나의 능력으로 소유하려면

십자가의 고난에 먼저 참여해야 합니다

 

오늘이 있어서 내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이 있기에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는 것입니다

죽음이 있어서 부활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이 있기에 죽음도 의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부활 신앙으로 승리하고 부활 신앙으로 용기를 얻으며

부활 신앙으로 십자가를 지는 아름다운 신앙인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東峴敎會 按手執事 徐文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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