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후기

부산 반여동 벽오동 /8월말

서문섭 2022. 6. 12. 13:44

부산시 금정구 금사동 석대다리쪽에서

반여 4동을 좌측으로 끼고 달리는 도시고속도로를

개인적으론 그리 자주 이용하지는 않지만

이따금 씩 편리하다는 이유로 심심찮게 이용하는 편이다

가로수로 심어진 벽오동나무 수십 그루가

가을 채비를 하여 열매껍질을 달고 있는 모습을 보게되는데

늘 고독한 모습이었던 벽오동나무다

요즈음은 가장 다감한 표정으로 친근한 모습을 내보이고 있다

초여름 우윳빛 작은 꽃들이 달릴 때보다

황갈색 열매껍질이 주렁주렁 달린 모양이 더 눈에는 풍성하다

가을이 되면서 암술이 성숙하여

다섯 갈래로 갈라져 생긴 바람개비 같기도 하고

()같기도 한 껍질 가에는

콩알 같은 열매가 서너 개씩 주렁주렁 달려있기도 하다

엄마 치맛자락을 꽉 잡고 있는 아기 손처럼

열매는 껍질을 꼭 붙들고 있어

잎이 다 떨어지고 난 뒤까지 남아있을 것이 분명하다

가을이 깊어 초겨울이 될 즈음 열매는 껍질과 함께 떨어질 것이고

지나가는 바람에 실려 날아가기도 할 것이며

강가에 떨어지면 종이배처럼 출렁출렁 떠내려가기도 할 것이다

나무 옆에서 뛰어놀던 옛 아이들은

그 잘 마른 열매를 떼어 먹은 아름다운 추억도 가지고 있을 게다

친구도 없이 나무 아래서 동생과 꼬물꼬물 놀던 옛 적 나 역시도

고소한 맛이 나는 그 열매를 주워 먹곤 했었지

친구처럼 익숙했던 그 나무 이름이 벽오동나무란 것을

필자는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어릴 적 고향 제종 동생집 담벼락에 서 있었던

벽오동 나무가 그나무인데 지금도 그 나무가 그대로 서 있을까 모를 일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상상하던 상서로운 새 봉황은

대나무 열매만 먹고 벽오동나무에만 둥지를 튼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있다

봉황이 날아와 벽오동나무 가지에 깃들어 울면

천하가 태평하다고 해서 옛사람들은

봉황이 날아오라고 벽오동나무를 심었다 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벽오동나무와 오동나무는 높이 자라고 잎이 다 같이 커서

비슷해 보이고 이름이 닮아 혼돈되기도 하는데

식물학적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다른 집안 나무들이라 한단다

벽오동(碧梧桐)은 나무껍질이 녹색이라 이런 이름이 지어졌으며

깨끗하고 푸르며 곧게 올라가 꼿꼿한 절개의 선비정신을 닮았다 하여서

서당이나 서원에 벽오동나무를 많이 심었다 한다

이곳 반여4동 도시 고속도로에 심어 놓은 벽오동나무도

어쩌면 그와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 고집하고 싶다

나무는 듬직하게 쌓아가는 꿈처럼 높이 자란다

벽오동나무 녹색 줄기는 오래 되면 이렇듯 회백색으로 변하는데

많은 사람들과 차량들이 오가는 길가에 자리하고 있어

고독을 즐기는 나무로서는 좀 번거롭다는 게 맞는 말이다

그렇긴 해도 꿈을 키워가는 풋풋한 뭇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벽오동나무의 푸른 모습을 보고 꿈으로 함께 이루게 되길,

여름에 햇볕을 가려주는 잎과 줄기까지 온통 푸른 기운에~

벽오동나무는 여름나무로 손꼽힐 만한데도

쓸쓸한 가을과 어울리는 나무로는 그저

고요와 성숙 적막의 분위기로 옛 시가와 문장에 자주 등장했을 법이다

벽오동나무 잎 하나 떨어지니

천하에 가을이 옴을 알았다 는 옛 시조도 있다

가을에 혼자 벽오동나무 옆을 걷다가

커다란 잎 떨어지는 소리가 뚝뚝 들리면

쓸쓸한 마음자락 안으로 그 소리가 떨어 지는 것 같았으리

벽오동나무는 빗소리와도 잘 어울리겠다

조용히 비 오는 날이면 창밖 벽오동나무 큰 잎에

후두둑 후두둑 비 떨어지는 소리에도 애잔함을 느꼈으니

예부터 많은 시를 남기게 됐을 만한 것이다

도시고속 도로에 서있는 이 벽오동나무도

늦은 밤까지 집으로 돌아가는 많은 차량과 사람들의 발끝에

나뭇잎을 떨어뜨려 가을이 왔음을 알려줄 것이 분명하다

가을과 쓸쓸함이 꿈을 더 깊고 야물게 키울 것이라 생각된다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며

여러 가지 삶의 조건 속에서도 마음 속 등불처럼

마음 안에 가슴 속에 품고

오롯이 걸어가는 사람의 꿈,

벽오동나무에 깃든다는 상상의 새 봉황이

실은 그 등불 같은 꿈을 말함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2005년 8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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