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며 대인관계로 골머리를 아파본 적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인격적 모션 가운데 가장 씁쓸하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겸손 부족이다.
누구나 사람은 자아를 드러내고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더 나아가 군림하고 그 기반으로 재물까지 탐하며
무엇인가를 취득하려는 욕구가 강렬하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는 결국 형벌을 자초한다.
겸손은 자기 비하 또는 낮춤 더 나아가 자기 희석 자기 비움이다.
겸손은 아름다운 인간성 내면의 미덕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겸손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
조금만 무시당해도 입에 거품 물고 달려든다.
무시당했다고 아예 떠나버리고 단절을 선포하는 세상이다.
무시해서 무시한 것이 아니라
살다 보면 언어나 또는 지시적 이해관계가 얽힐 수 있기에
다소 자기를 낮춘다고 생각이 들면
그 기간을 못 참고 엎어 버리고 떠나버리는
주변인들이나 교인들을 보면서 참 안타까움을 느낀다.
예수는 하나님, 즉 창조주지만 피조물로 이 땅에 와서
온갖 모욕과 배신 그리고 끝내 죽임을 당했다
인내하는 과정을 잘 통과함으로 신의 위력과 인간 사랑을 보여주셨다.
나를 무시하고 대접 안 한다고 뒤집어 엎고 떠나버리며
기분 나쁨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성숙하지 못한 인격들을 보면서
참 아쉬움이 많음을 경험하게 된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되는 데 인내가 부족한 탓이다.
그리고 내적으로 인격적 성숙이 많이 모자라며
성격이 조급하고 자극적이며 다혈질적이다.
자신들이 주도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안 되면
마지막은 엎고 개판을 쳐 버리고 떠난다.
인간의 악함을 보면서 염증이 생긴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겸손이다.
그리고 가장 아픈 것은 배신이다.
사랑의 뿌리는 겸손이고
꽃은 인내이며 열매는 섬김과 대접이다.
남을 대접하는 이는 자아를 버리고 내가 죽고 상대가 살게 하는 것이나
교만한 사람은 남을 죽이고 자기가 살기를 원한다.
성령의 사람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지만
육의 사람은 자기 유익만을 찾는다.
겸손은 자아 성찰을 통해서 비우고 낮추어야 하며
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신이 높아지게 하고
더 나아가 상대를 높이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겸손을 배우고 익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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