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그 자리에
막 구겨진 종이처럼 네가 서 있다
네 섰던 그 자리 콜록거리며
지나가는 바람 한 소절
바람이 훑고 간 텅 빈 자리
아직 겨울나무로 떨고 서 있는
너의 그림자
비에 씻기는 얼굴이
차갑게 느껴지는 밤
비라는 이름을 가진
낱낱의 몸짓들은
무너지는 천 개의 얼굴이던가
목 울대가 뻐근하도록 서럽다
괜찮아 그렇게 사는 거야
살다 보니 그러네
낯익은 너의 목소리
심장은 해일처럼 길길이 날뛰고
오늘 밤,
비는 내 품속에서 울었다
너를 만나고 싶어서 비는 내리고
그 자리엔 흐트러진 얼굴 하나
사무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