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나라

개밥풀 外 내 눈을 당신에게

서문섭 2019. 10. 28. 11:35

 

***개밥풀-- ___이동순  시인
 
아닌밤중에 일어나
실눈을 뜨고 논귀에서 킁킁거리며
맴도는 개밥풀
떠도는 발끝을 물밑에 닿으려 하나
미풍에도 저희끼리 밀고 밀리며
논귀에서 맴도는 개밥풀
방게 물장군들이 지나가도
결코 스크램을 푸는 일 없이
오히려 그들의 등을 타고 앉아
휘파람 불며 불며 저어가노라
볏짚 사이로 빠지는 열기
음력 사월 무논의 개밥풀의 함성
논의 수학을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함부로 버리며
우리의자유를 소중히 간직하더니
어느날 큰비는 우리를 뿔뿔이 흩어놓았다
개밥풀은 이리저리 전복되어
도처에서 그의 잎파랑이를 햇살에 널리우고
더러는 장강의 소용돌이에 휘말렷다
어디서나 휘말리고 부딪치며 부서지는
개밥풀 개밥풀 장마 끝에 개밥풀
자욱한 볏짚에 가려 하늘은 보이지 않고
논바닥을 파헤쳐도 우리에겐 그림자가 없다
추풍이 우는 달밤이면
우리는 숨죽이고 운다
옷깃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귀뚜라미 방울새의 비비는 바람
그 속에서 우리는 숨죽이고 운다
씨앗이 굵어도 개밥풀은 개밥풀
너희들 봄의 번성을 위하여
우리는 겨울 논바닥에 말라붙는다 
*** 내 눈을 당신에게ㅡ-___이 동 순  시인

                                _어느 실향민의 유서_ 
내 눈을 당신께 바칠 수 있음을 기뻐합니다
이 온전한 기뿜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
그리고 내 이웃들에게 삼가 감사드리옵니다
이 몸을 어버이로부터 물려받은지 오늘토록
오직 하나 참된 보람을 위해 살아와서
이제 저 하늘의 부름을 받고 떠나옵니다
내 병은 불치의 암. 모두가 슬푼 눈물을 흘리지만
오히려 나는 기쁨의 때가 온 줄 미리 알므로
거짓인 양 침착하게 더욱 당당하게
내 눈을 당싱께 바칠 수 있음을 기뻐합니다
이제 내가 죽은 후에도 살아있음을 나의 눈은
오랜 어둠을 헤매온 당신의 몸 속에서
누구보다더 가장 떳떳한 밝음이 될 것입니다
일백번 죽어도 죽지 않는 긴 삶이 될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도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아끼던 눈뿐만 아니라 소중한 그 무엇을
없어서 고통받는 이에게 나누어 드리십시오
몸을 주고받는 사랑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물에 빠진 자식을 구하려고 깊은 소로 뛰어든
일가족 죽음의 뜻을 이제사 조금 알겠습니다
끊어도 끊어지지 않는 사람의 단단한 끈이
우리 겨래의 가슴속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지금 내 마음 무어라 말할 수 없이 행복합니다
죽기전에 소원이 있다면 꼭 한 가지
대대로 이어진 나와 당신의 작은 눈이나마
영영 꺼지지 않는 이 나라의 불씨가 되어
북녘 고향 찾아가는 행렬을
두 눈이 뭉개지도록 보고 또 보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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