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시(動物詩)

반구의 결혼식

서문섭 2024. 12. 10. 10:07

녹음 짙은 초여름 한낮

산비둘기 무리들 우루루 날아와 

연신 꾸벅꾸벅 주례자에게 절을 한다

 

유난히 때깔 좋은 신랑 신부는

뭐가 그리 급해서인지

주례자 순서 외면한 채

서로가 꾸벅꾸벅

이곳저곳 목 깃털 골라준 뒤

입맞춤하고 등에 올라타 

잽싸게 사랑을 나누고 만다

아무도 눈치할 수 없는 뜨거운 사랑

사랑에 불시착 한몸 된 산비둘기, 

 

내리쬐는 태양이 땀을 흘리고

바람에 둘러선 하객들 춤을 추었지

부디 행복하기를,

한평생 해로하기를,

순간 증인 되어 두 손 모아 축복하는데

결혼행진곡이 장내에 울려 퍼진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트롯트 가락

버림받은 수비둘기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거문고 현을 타는 듯 가슴을 쥐어뜯네

아! 만남도 헤어짐도 분분한 세상이

우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든가

 

'동물시(動物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쑥국새  (0) 2024.12.09
새鳥 2  (0) 2024.03.11
매미  (0) 2022.07.29
파랑새  (0) 2022.07.03
새鳥 1  (0) 2022.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