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굴산에서 (7월)
가까이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했던가
똑같은 산인데도 산자락 일부는 합천군이 차지하고
다른 쪽 대부분은 의령군에 포함된 자굴산은
해발 900m에서 겨우 3m 모자란 897.1m로 높은 산이다
자굴 산을 찾아가는 길은
경남 의령 칠곡면의 내밀한 속살로 들어가는 길이며,
홍의장군(곽재우)의 산실인 역사의 숨길이 살아있는 곳이라 하겠다
칠곡초교를 거쳐 외조리를 지나면 내조리 마을회관에 이른다
이를 기점으로 담배참, 절터, 금지샘을 통과하여
오늘의 산행지인 자굴산 정상에 오를 예정에 있다
자굴산을 금방 알아차릴 정도로 멀리서 봐도 조망이 좋고
병풍에 둘러싸인 듯 한 지형에 따른
아름답고 좋은 산임을 산꾼들은 금방 알아차린다
산으로 들어서는 통나무 계단이 눈에 띈다
계단을 오르는 길에 안내 표지판이 서 있는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4.5km 라는 표시가 새겨져 있다
바로 이 길이 산등선을 타고 오르는 내조리길이다
그리 가파르지는 않는 길을 유유자적 다소곳하게 걷는데,
산꾼이나 나무꾼이 쉬어가는 “담배참”이라는 곳이 나온다
돌담을 쌓아 놓았는데 그곳은 지개를 받쳐놓고
휴식을 취하며 담배를 한 대 피워가는 곳이란다
아닐세라 필자도 이곳에서 등산 빽을 내려놓고
준비해 온 오이를 꺼내 우적우적 씹으며 휴식을 취해본다
옛날에는 자굴산에 많은 사찰이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엔 빈 절터만이 산을 지키고 있어서
그 많았다는 절들이 어디로 사라지고 자취를 감췄는지
의구심마저 든다.
산세가 좋고 비경이 뛰어나 오를수록 점입가경이다.
둘레 길의 아름다운 정취도 맛볼 수 있는 보너스 산행이다
천황산과 자굴 산을 끼고 사는 순박한 사람들과 함께
맞장으로 어울리고 웃을 수 있는 즐거움도 덤이다
이 자굴산은 양(陽)의 숫 산인
합천의 황매산에 대응하는 음(陰)의 암산이라고 한다
이를 확인하는 재미있는 사실은
신선대 옆의 “금지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무속 신앙이 얼마나 성행 했으면 그리도 전했을까
사실로 양 바위 사이에 굴이 음핵까지 갖춰져 있는데
그 모양이 여자의 음부를 닮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맞은편에는 남근을 연상케 하는 송곳바위가 있어서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온갖 이야기와 전설들이
곳곳에 오롯이 남아 있는 산이라 말하고 싶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인가
역시 홀 할머니 너덜이 기다리고 있는 터인지라
숨만 고르고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운다
베틀바위에서 베를 짜는 할머니가
실 무더기를 누를 돌을 취하여 치마로 감싸고 가다가
흘렸다고 해서 이름하는 곳이다
할머니는 왜 베를 짜려 했을까?
베를 짜서 무엇을 가려주려고 했으면
또 누군가가 한사코 굳이 베 짜는 것을 왜 훼방했을까?
아마도 이 산에 절이 없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건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일이다
바로 윗 쪽에 토방식 암자가 있었다는 절터도 보인다
이 절터에는 옛날 스님들이 떠먹었을 만한 우물이 지금도 있다
우뚝우뚝 솟아있는 암봉들과 신선대가 바로 올려다 보여
경관이 빼어남으로 쉬어가는 장소로도 흠이 없을 것 같다
여기서부터 키가 장대한 나무들이 많이 자생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소나무와 참나무가 많다
참나무열매가 익으면 껍질이 벌어져 떨어지는 게
어릴 적 상수리 열매를 따서 껍질을 갈아내던 기억이 새록하다
손에 까만 물이 들어도 오밀조밀한 상수리열매 얻을 욕심에
갈고 씻고를 얼마나 반복했던지,,,
나무와 숲을 지나 약 30여분을 걸으니 달분재라는 곳이 나온다
옹녀봉을 넘어 왼쪽으로 급선회 하여
다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내조리로 가는 길이 열린다
길 따라 내려오는 길목에 둘레길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자굴산 둘레길을 찾는 사람이 많아서 인지
곳곳에 술집과 쉼터가 들어서 있다
모내기를 일찍 했는가
벼가 제법 자라 산 밑까지 녹색 융단을 펼쳐 놓았다
낮달이 떠 석양과 달빛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산
석양이 질 때 다시 한 번 걸어 보고 싶은 산길일레라
습도가 높아서 헉헉 숨이 차다
장마철 산행은 조망도 시원찮고 무덥지만
온몸의 노폐물을 쫙 뺄 수 있어 오히려 기분은 더 상쾌한 것 같다
됫박이나 되는 땀방울을 쏟아냈으니 말이다,
산 나리꽃이 저만치 주황색으로 물들어 산꾼을 반긴다
부끄러운 듯 싸리 꽃도 작은 몸을 숨기려 하지만,
고운 색은 어쩔 수 없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철 따라 꽃들을 볼 수 있으니 산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호사다
날씨가 무더우니 걸음이 더딜 수밖에 없다
산길 곳곳에 산짐승들의 배설물이 널려있다
야생동물이 밤새 누비고 다니던 길을 사람들이 또 다닌다
야생동물은 안전 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배설을 한다고 하니
기분 좋게 배설을 할 정도로 마음에 든 편안한 산길인가 보다
하지만 오늘은 온통 구름에 싸여 코앞도 분간하기가 힘들다
이럴 때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산짐승들이 곁에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은 날이다.
완만한 오르내림이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푸른 녹음이 쏟아내는 물질과 피톤치드를 맘껏 들이마시며
온몸을 정화하는 산길이다
경치 좋고 마음이 탁 트인 아름다은 자굴산의 산행
마음껏 즐기며 느긋하게 걸어 내리마을로 원점 회귀한다
2010년 7월 15일
경남 의령 자굴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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