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리는 가을 온 동네가 탁! 탁! 탁! 가을걷이하는 들마당에서 우리 엄마는 참 깻단 두드리고 나는 컴퓨터 자판 두드린다 똑같이 두드리는데 엄마는 깨가 한 말 나는 글이 헛말 어머니는 수확이 크지만 가득 찬 가을 자나도 흔한 쌀 한 줌 거둘 게 없는 나는 주머니마다 들쥐같이 詩 쉬하는 시들이 빈 주머니를 갉아 먹고 있다 시와 문학(詩,文學) 2020.04.12
무 의 탁 노인을 만나다(1월) 진눈깨비가 봉창 때리던 날엔 찬바람이 벌떼처럼 날아와 메마른 무릎을 쿡쿡 찔렀지 달콤한 오수는 고물 장수 엿장수 소리에 잠시 잠이 깨이기도 하지만 꿈길 좁아 한 번쯤 수침 자세로 바꾸어줄 뿐 대개 밖으로 걸려있는 활동반경이 생각보다 짧아 영감태기 장날 말곤 집 나가는 일 거의 없단다 가세의 불운이나 병마로 인해 자신 갉아 먹힌 꿈 이야기지만 잘난 자신의 행적 자랑할 때는 눈빛이 이글거리는 햇살 같다 가파른 비탈 위 너와집 비가 오나 눈이 오려나 먼저 보낸 할머니를 생각하는지 아니면 자식 소식을 기다리는지 좀처럼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어느 무의탁 노인 시와 문학(詩,文學) 2020.04.12
주걱 고추장 담그다 말고 앞치마 두른 울 엄마 동네 마실 나간 사이 주걱나무 서너 주 겨울 양식 얻으러 온 흥부 뺨이라도 때릴 듯이 부랑하게 서있다 동글납작한 둘레 그 뽄 새 잘생긴 뒤통수처럼 왠지 얄밉다 오늘은 저 주걱 끝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뒤집혀 섞이고 싶다 밥풀떼기 부엌 떼기 면천 못하는 주걱나무 그 반반한 엉덩짝에 붉은 고추장처럼 몇 바퀴 휘둘리고 나면 줸장 맞을 맛 내 인생도 맛날까 시와 문학(詩,文學) 2020.04.12
울고있는 가을 얼마나 절절한 울음이면 추녀 끝에 주저앉은 별처럼그 긴 밤 세워야이 계절 다할 수 있을까회색빛 걸치고 숨어든도시의 빌딩숲에서배회하는 주변의 밤은유혹의 밤 거리요하룻밤 풋사랑을 판다며핑크 전단누드 보이는여인의 명함들이이른 낙엽처럼 나뒹굴어 댄다담배꽁초 문 종이컵이입술 꾸기며 욕지거리 하듯침 찍찍 갈기는뒷골목을 부르는 소리아무도 없는외로움 떠나버린 움집에서무서움에 집 나온 풀벌레들이울며 문밖에서 떨고있다 시와 문학(詩,文學) 2020.03.29
황새여울목을 돌며 황새여울목을 돌며 (강원도 동강) 어린 임금이 유배된 한 많은 영월 땅푸른 물길 따라 정선 아우라지엔늦은 겨울이 하얀 이불에 덮여있다 어름 치 물고기 비늘이 반짝이는비단 폭 같은 어라연이라거슬리지 못 할 세월의 물살처럼뒤로 넘어지는 물길 된 꼬까리황새여울목 돌아나가며뗏목배 타고 서울 마포나루로소금 팔러 떠난 님구성진 뱃노래가락산돌아 물돌아 구를 비 돌고 도니귓가에 아련하고도 익구나 흑백사진 속 남아있는따스한 만지산 나루터 객주 집전산 집에서 술상 차리던아낙들의 매운 눈물 찍어내던치맛자락 설움 많던 그 옛날 정두고 간 주막집 마다아라리 아라리요바람처럼 떠돌던 님 기다리며뗏목 배 띄우며 살던 일이지난세월 한 자락모질게 끊어낸 전설로 남는다 시와 문학(詩,文學) 2020.03.29
능소화 후텁지근한 칠팔월 협착 근 굳게 뻗어황망히 오르는 면벽그윽하게 흘러 쓴담홍빛 입술의 사랑,금분 떨리는 꽃가루에두 눈이 멀어도따뜻한 실핏줄오묘한 질구그 나팔관 속으로 들어가나는 황홀한 정점에물구나무 선 착상을 꿈꾼다 7~8월 시와 문학(詩,文學) 2020.03.29
화석 그대 세상 살면서 뜨거운 것 한 번이나물컹하도록 밟아 본 적 있는가일억 년 전 몇 천도의 용암그 마그마를 식히던여름날의 짧은 소낙비였을까 바위 서책에 암각된눈먼 비의 발자국들이누군가 점자를 짚어가듯비의 문장들도 살아있고죽음도 꼿꼿하도록저렇게나 뜨겁게 맨발로 건너갈 때 한줄기 시원한 판독 기억되는비의 화석 남는다면가슴 두드리는 빗발 같은 시詩시詩의 화석이 되기까지얼마나 뜨겁게 사람의 심장을활화산처럼 녹여야 하는 건지... 시와 문학(詩,文學) 2020.03.29
풀물 든 오두막- 초여름 산그늘 내려 왔던 길 돌아보다가 목 고개 젖힌 산길 어디쯤에 초막 하나 짓고 싶어지네 구름산 양떼 몰아가는 저녁 언덕배기에 돌아오는 사람 없어도 달맞이꽃 피고 별빛 더불어 환하여 시詩 흘려 쓰는 원고지 칸칸마다에 풀물 든 그리움 채우고 싶네 고라니 살찐 뒷다리 일몰의 능선에 풀어놓는 방목의 밤 찾아와 풀벌레 울음 지쳐갈 즈음 나무 넝쿨 엮은 침대에서 헛된 꿈 전혀 없는 고운 단잠 들고 싶어지네 시와 문학(詩,文學) 2020.03.29
가을에는 울고 싶다 한 나절 밀짚으로 엮은 여치집 속으로 들어가초가로 엮은 처마 끝에곤충 가슴의 맥박 떨판을 빌어*찌르레기 처량한 울음 반열에서실컷 한번 울어 보고 싶어지네슬프지도 소란스럽지도 않게벌레소리 듣기 좋은 한철맑은 생 울음들에 도취되어 가는호박꽃 초롱 환한 밭두렁과무논에 개구리 떼 합창에간간히 끼어드는 가을밤우렁찬 소리의 소통찌르륵 찌르륵 찌륵 찌륵은밀한 밀교의 접속으로사랑의 암호를 타전하다울음소리,그 파장을 조율하는 족속격렬한 울음 유전자들난생 그리움을 문지르면묘연한 노래가 돈다하든가*지르레깃과의 새 시와 문학(詩,文學) 2020.03.29
출렁이는 가을 - 가을이 출렁이는 들녁엔 받아놓은 밥상 같은 알곡들이넓은 논배미마다 곳간을 채우고 종소리 들리는 초등학교글 읽는 아이들의 눈동자가산머루 알처럼 까맣게 익어만 간다 해님 달님 놀다간호랑이 피 붉은 수수밭 지나송아지 부르는 밭두렁에노란 햇 호박이 긴 탯줄을 감을 적 코스모스 핀 신작로 길 따라고추잠자리 떼 날으는 하늘하늘이랴이랴 소달구지에열무 단 싣고 더수장에 가신 아버지 오늘은,은빛 갈치 한 손 사들고밀짚모자처럼 웃으시며오실 것만 같은,가을... 시와 문학(詩,文學) 2020.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