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별(그대의 향기) 79

옥이에게

먼동이 하얗게 익어갈 무렵부스럭거리는 소리에귀 끝 쫑긋이 새운다가는 곳 알 수 없다다만 보내야하는 마음어쩔 수 없질 않는가적막 깨우는 발자국 소리예칙 못할 시간 속으로사라지듯 사라져 간다 옥아,불혹을 넘어버린 세월이다혼미해진 생각 되돌릴 수 있다면이제라도 정신 되돌릴 수 있다면조여 있는 가슴에 불씨 담고쓰리고 아픈 마음 남김없이 태워부는 바람에 주저리주저리날려버릴 수 있으련만 *푸른별*

발포 해수욕장

묏등 건너편에 정자나무 섰네 나무에 올라 바다에 귀 기울이니친구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네나보다 먼저 눈 감았다며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하네 제 삶의 중년처럼곧은 뿌리로 서 있는 나무꽃 한 송이 더 피워보려해풍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는데먼 길 떠나버린 너봉분 옆 조화 한 송이에그리 족하단 말인가 이제,남겨진 가족소식 듣는가꽃잎지고 과일 익는저 소리들과 함께 *푸른별*

장모님

매운 칼바람이 나무를 와락 부등켜안고숨이 가쁘게 흔들어대며사납게 춤을 추어댄다허리가 휘도록악랄하게 불어대는 돌풍에가진 것 남김 없이 내어주며깡그리 춤 값으로 지불한다 억겁 세월 춥고 긴 시간다 비워낸 허전한 자리무엇으로 휘 감아줘야 할지애틋한 자식사랑 앞세우고봉긋한 양 가슴에 묻었으니지나는 바람소리도 이젠귓전을 파고도는 매미소리 들리고침침해가는 눈시울에 이슬도 없다하늘 향한 구순(九旬)의 세월장모님의 뒷모습이 자꾸달빛으로 야위어만 간다 *푸른별*

참게잡이

마음 설레도록웃비 내리고 황토물 일면참게들 온통 바다를 향하고물결 따른 거친 신음소리허우적이며 긴 밤 쓸어 담는다무너진 눈꺼풀 치껴 새우니엣따 이놈들 봐라훤칠한 덩치 큰 놈이사립짝 문발 앞에서갈 길 잃고 서성인다불쑥 잔등 움켜쥐면이끼냄새 입속에 퍼져가고숨 가쁜 잠행에 고요가 따른다체념해버린 잠의 모서리천연스레 꾸벅꾸벅 참게가 뻐금대며 야유를 한다 *푸른별*

눈 오는 날

펑펑 퍼부어 쌓인 눈이 사람이나 하는 일마저도모든 동작을 멈칫하게 한다멈춤은 휴식이라지만나는 버스 핸들을 돌려야 한다쌓인 눈은 달갑지 않다만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나니동심의 장난기가 되살아난다눈을 굴러 눈사람을 만들거나주먹덩이 눈 만들어 날리며벌겋게 얼어붙은 손 호호 불 듯나무썰매 타며 뛰놀던 시절이나를 이끌고 그곳으로 간다길이 미끄러워 힘들어도추억은 곁에서 떠날 줄 모르고버스는 여전히 벌벌 긴다 *푸른별*

가을

시골길을 찾아가본다 모으고 보냄이 손짓하는 계절 들녘은 어김없이 황금빛으로 너울거리고 기다랗게 높아진 하늘 밑 붉은 별 천일홍 꽃님 앞에선 아쉬운 이별을 싱그러운 향기로 찾는다 참새가 허수아비 팔에 안기고 들판에 잠자리 메뚜기가 나를 살갑게 반겨주듯 가을은 세상을 풍성히도 자아낸다 잘남도 아니고 못남도 아니랴 산과 들 그리고 바다에서 아! 욕심만 없다면 모든 풍요 간직할 수 있으련만 가을은, 아무런 준비 없이 찾아가도 잘 부풀린 햇솜처럼 그렇게 그렇게도 넉넉함과의 동행이려니 풋과일 베어 물고 지나보리라 농부이마의 주름사이로 땀방울이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