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별(그대의 향기) 79

낙원

아무나 요단을 건너면 안 되지 펼쳐진 내 소망의 이상향황금다리 너머에는각종 과일이 주렁주렁요단강 저편에 바람이 소소(蘇蘇)하다한세상 무성했던 죄악훌훌 벗어 던지고마침내 안온한 천국알몸으로 선다욕심으로 가려졌던 저 하늘 열리니깊고도 넓어라그윽도 하여라아름다운 소쇄원(瀟灑園)의 동산아*소쇄원;흠과 티가 없는 맑고 깨끗한 곳 *도서출판*

추억의 봄

봄이다 황금빛 색깔의 햇빛이뽀얗게 시야를 가린다열 예닐곱쯤의 봄날 즈음에계단 논 보리밭 이랑에 앉아나는 꼴을 베고 있었지갓 피어난 보리 이삭의까끌까끌한 수염이자꾸 눈을 쑤시어 따가웠지만눈을 들기라도 한다면봄 햇살 부드러워온 들과 마음은 꽃으로 지천이다아득한 세월지난 시절을 뒤 집어 놓고스며드는 추억의 시절이 푸르러그 날들 푸르다 하지만정작 꼴 베는 내 모습 어디를 가고 보이지 않는 나의 봄 *푸른별*

봄비가 내리면

촉촉이 봄비가 내리면부르는 음성은빗방울 소리에 적시어 옵니다귀 기울이면 목소리 들리는 것 같아도랑물 깨워 말을 새깁니다갈갈이 찢어 내리는 슬픈 기억들쏟아지는 봄비에 씻기우고흠뻑 젖어버린 찬 기운잠시 옛일을 생각나게 합니다봄비를 기다리듯그리워하는 나무들 마냥그대를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파릇파릇 이파리가추억의 소리를 쏟아 냅니다 *푸른별*

가버린 사람

빈 마음 허공에 취해보니어느새 노을은 붉게 물들었고멀찌막이 몽기는 그대 모습에는눈시울이 뜨겁다바람처럼 구름처럼 허공에 날리는흩트려버린 그리움과채우지 못한 눈물이스치듯 비껴가며 새록새록 피는가내 곁에 남아 있는 아물지 않는 상처 땜에 마음 아프고 설타돌아와 주랴 달려와 주랴미련이 아련한 추억의 끝에 서서희미하게 남은 흔적들을가슴에 퍼 담는다마음의 문 열고 그대를 불러 보지만빈 마음 또 생각 끝에서 저물고궁색함이 가만가만 침묵을 떨어낸다창을 닫는다 조용히 *푸른별*

젖어 드는 사랑

쏟아지는 비에 젖어드는 새벽녘 마음 샛강에 홀로 서 있노라면미처 못 이룬 꿈 그리움으로 일고모락모락 사랑의 노래 물안개로 핀다.강기슭 기웃거려 상처를 씻어볼까야속했던 허상 눈물로만 삭이는데밀려오는 시린 삶이한없는 흔들림으로 다가와잠시 진저리치듯 가슴을 헤집는다쏟아지는 비는 내려야트막한 샛강이 되는가깊숙한 눈물로 흐르는가한 줄 금의 추억맑은 유리알 같이 떨어지는 빗방울로애틋한 상처 남아 내 마음에 젖어든다 *푸른별*

들꽃에게

이른 가을꾸미지 않는 모습이 이쁘다청색 실꾸러미로 수놓은푸른 잎의 옷처럼기품 움츠려 들지 않는 아름다움척박한 땅에 자리하고수많은 잡초 사이에서수줍어하는 듯 얼굴 밀어 올린너의 작은 모습은청순하다 못해 귀엽기까지 하다이따금씩 슬쩍슬쩍 지나는 바람이너에게는 친구이긴 하다만의지할 것 없는구석지고 적막한 들판에서꿋꿋이 핀 가슴이 너무나 뜨겁기만 하다비록 잡초라지만 참으로 네가 부러울 뿐이다 *푸른별*

기일忌日

추적거리는 여름비가그대의 추억처럼 핏빛으로 내립니다황망히 피해가던 세월의 무게만큼이나급하게 짓누르는 설움떨어져 내리는 빛깔이 섧습니다아물지 않는 신음소리 가녀린 기운온 땅 구석구석에 눈물로 고여 듭니다그대 향한 그리움이세상 늪 향해 서럽도록 내 달릴 때허전한 세상은아련한 모습으로 파도를 이룹니다그립도록 아른거리는 눈망울한 송이 꽃망울 되어빨갛게 맺혀 있습니다. *푸른별*

당신에게

오랜 세월 기대를 저 버렸으나속절없이 나만 믿고 사는 그대에게사랑한다는 말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고락을 삼키는 무수한 세월 지나황혼의 들녘에 서서그날들의 사연들을 꽃으로 피워본다지만당신 앞에서는 잘난 체 할 수도 없습니다나만 바라보는 당신그대만 바라며 살지 않았는지가날픈 몸 흔들어주는 억새 같이청순하고 소박한 그대 앞에서계절만큼 넉넉한 마음으로 다가가따스하게 어루만져 보고 싶습니다 *푸른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