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별(그대의 향기) 79

여정

열어 제낀 사립문사이로 바쁘게 움직이는 발걸음들 가로등 긴 그림자 끌고 간 덧없이 늙어버린 흰 머릿결 그림자들 희멀겋게 울타리한 달빛 아래 흩어지는 낙엽들이 하나 둘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갑자기 휘몰아친 거센 돌풍에 두루루 화들짝 놀래고 떨구지 못한 잎새들과 이별을 한다 눈가에 핀 무정한 세월 깊어가는 하얀 황혼 골 패인 여정이 자욱한 생각들로 가슴에 밀려든다 아직 가랑잎이 남아 있으련가 고단한 날개 접고 잠이나 들까보다

아버지

이 아름다운 밤 곤히 잠드신당신을 깨우고 싶습니다밤 한기가 나무둥치를 안고하늘의 별은 가슴으로 빛나함께했던 지난날들이마음에서 지하수로 솟습니다지금 앞마당감나무들도새파란 하늘 길 서성이는반구의 노랫소리도마당 앞 딸각돌 흐르는도랑물 떠나보내고적막이 감도는 무덤 앞에 섰습니다설움이 첩첩 쌓인 밤당신과 함께 달빛을 보면서못 다한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지금 내 머리 위에선별들이 무더기로반짝반짝 피어나고 있습니다

회동 수원지

이슥토록 무거운 아픔 견디고 해산의 고통은 새벽을 깨운다 질펀히 앓아 누운 물안개가 수원지 위로 모락모락 피고 나가 앉은 언덕 배기에 하얀 서리가 지천이다 흐르는 물줄기 내달려 물고기 떼 선잠에 취하고 으악 거리는 왜가리가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멈추인 듯한 용솟음 꿈틀거린 회동의 새벽 또 하루가 밝아 생명이 교차하는 섭리 신비를 마주한 채 마음 으깨고 싶어 목청을 높이고 싶어한다 가슴이 터지도록... *푸른별*

해창만 들녁에서

해창만 들녘에 낫소리 여운이 남은 듯싶어그 소리 그리워 여기에 섰네 도시의 아스팔트 매끄러운 몸매솟아오른 마천루의 거대함도내 영혼 쉴 곳 어디에도 없네돌아서면 다가서는 황톳길 흙내음새들의 날개짓 소리가 여전하고너희 부르는 소리가 다름이 없다만나는 이방인이 되어 본래소리 잃었고타향에서 육신의 자랑으로숱한 날 속절이 없구나시름없이 바람향기에 젖고내 귓전에 노랫소리 들리니뿌연 추억 속을 살부비며나뭇잎처럼 흔들리는구나얘들아!나도 그 노래 부르고 싶다만세월이 옛날 소리 다 가져갔고지금에사 내 사연바람에 실어 보낸다 *푸른별*

단풍

하늘은 높고 푸르러서괴리감에 안타까울 진데 차마 할 수 없는 말 푸른 잎에 앉은 햇살이 엿듣네 마음 둘 데 없는 이파리들붉은 옷 갈아입고 손을 흔드네 화려한 몸짓으로 일어난가는 이의 마음 얼마나 아름다운까지나가는 골짜기능선마다승전군勝戰軍 깃발 휘날리는 듯한붉게 달아오르는 가을불길에산이 타고바람이 타네산에 든 나도 절로 타고 있네

깊은 밤

밤이면 수를 놓은 화창한 별들부스러진 모래알처럼이나무르녹은 풀무질에 빛 발하듯온밤 뒤척이며 초롱히 빛난다별빛은 가인의 눈빛 같아서거울 속 감추인 이름들처럼시간의 이별도 잊은 채그리움 메아리 쳐 아른댄다왜 밤만 되면온통 은빛으로 쏟아져 내리는가고독이 사랑에 닿을 때까지비집고 들어서려는검푸른 하늘마당에서하염없이 그리움을 노래하는 걸까 *푸른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