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하늘에서 보내온 편지) 79

적요를 깨우며

문 밖에서 누가 우는가 인적이 뜸한 산언덕 외로운 묘비처럼 어느 뉘 가슴 저미는 아픔으로 쓸쓸히 돌아서서 울고 있는가 그대의 꿈은 처음 만난 인연과 한 세상을 바꾸는 것 작고 소박항 꿈이었거늘 산산이 부서지는 원혼이여! 봄바람 스치는 소리에 만나지려나 차디찬 한설 날리는 날에 보려나 한순간에 깨질 요행 바라보는 세상 아직은 답답하고 조용할 뿐, 귀를 기울이면 들려올 듯한 목소리 어차피 꽃잎새에 내려앉은 영혼의 설레임이었으면 좋았으리 슬픔이 떠난 자리 황한 별빛이 내렸으면 좋았으리

등나무

한 입 베어문 푸석한 소외 그대 환영에 마음 심히 어지럽다 스산한 바람이 일면 하나 둘 불을 밝히고 어렵사리 춤사위 하늘거리더니 휘영청 그네를 탄다 굽은 손가락도 펴면 하늘을 가르키듯 망연히 눈 길 모아 누은 몸 서로 보듬어 안는 사랑을 배워본다 영운히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랏빛 출렁이는 구비구비 여유로움 어둠을 파헤치려는 그대의 모습에서 나부낌, 애달픈 만남이 된다 손끝에 안겨 얼마나 기다렸을까 빚어낸 추억 돌돌 말아 켜켜이 박힌 마음에 켜 든 아픔 바람으로 익힌 길 따라 온기 깃들지 않은 그늘진 너의 숲으로 내 숨결 잔잔히 스미어 들 때 너울너울 아프구나 가로등도 하나 둘 참 아프다

슬프지 않습니다

잔주름이 소리 없이 찾아와도 처절한 아픔이 기러기 아픔 같은 소릴 내어도 사시닢 떠는 소리로 마음이 아파도 결코 슬프지 않습니다 형관을 씌워 십자가에 메달리게 했던 사람의 잔혹함이 또 있을까 부질없는 허욕이나 허공 속에 몸부림인들 사방에 다 흩어진 채 끝내 온화함 이기지 못했으니 모진 게 삶이라 해도 그로인해 슬퍼하지 않습니다 모진 아픔이 찾아와 속가슴을 풀어내려도 오롯하게 웃어볼 날 애타게 기다리며 주어진 그 슬픔들 사란하렵니다 나는 결코 슬프지 않습니다 결코 슬프지 않습니다

야생화

외로워 하지말자어차피 들에 핀 꽃이다핀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성급히 오지 않는 때를 기다리지 마라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조용히 때를 기다리다가바람이 불면 날개를 접고비가 내리면 그 날개로 우장을 해라산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이고들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이다히죽히죽 자꾸 웃어보자작은 꿀벌들의 날개짓이 바쁘지 않을까 밤하늘 별빛은 새치름하나널 보면 그래도 아름답지를 않으냐외길의 삶처럼제자리 맴돌며 한생을 사는너의 이름은 아름다운 야생화다

구월에는

바람이 한결 뽀송뽀송해진 구월따가운 햇살이 외려 살가워진다만발한 가을꽃이 천지에 휘날리면산행의 계절이라서인지다시금 마음이 달뜬다사람마다 가슴마다가을 꽃이 활짝 피어 오르긴 하나바쁜 일상 땜에그 꽃 보기가 언감생심가을꾼들의 체증속은뿌려지는 시간으로 아쉽기만 하다천혜의 명산 같은 산을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다면그곳이 빠듯한 9월이라 한들산과 함께하는 그 즐거움맛보게 됄 수 있을 것을...

산소에서

저 산 하나 쌓고 그것 지키기 위한 생애가알탕 갈탕 눈물이 겹다그리웁고 아름다운 그 무엇보다사람의 마음위에 솟는 산이 좋아돋아놓은 저 봉분을 지킨다영혼의 쉼터가 여기는 아닐 터생전에 하던 말 들을 수는 없어산소 앞에 나는 귀머거리가 된다왕 댓잎은 푸짐하게 울어대고시누죽 어지간히 시끄럽다바람 서로가 부딪지 아니한데저놈의 댓잎처럼내 마음은 왜 이리 부딪힐까부끄러워해야 할 불효의 빚떠난이에게 지우고 있을 줄 몰라그저 뻔뻔스럽게... 깎아지른 언덕배기에비스듬히 달려 핀 야생화창작했던 자 떠올리게 되고뾰족한 대나무 뿌리를 보면그릇된 세상사에 맞서는우리 마음에 날카로운 칼이구나풀밭에 앉아 쉬어야 할 즈음잿빛햇살 이마에 내려 곰실거리고묏등에선 쑥부쟁이가 춤사위를 한다

단풍잎

누우런 단풍의 때깔어설피 그냥 보고가지 말자다가올 봄향기달려오는 그 촉촉함맡고 갈 향기가 미리 흐른다물 기 없는 메마름단풍의 흐느낌이 서글프듯어쩌다 부딪히는 소리에온 몸 으스러지고까칠한 모습 진정 무엇이던가 훈훈한 속살에 젊음이 마르고세파에 지쳐버린 나그네들 감싸는단풍닢의 아우성 소리흐느끼는 목마름에 술렁이며한 방울 눈물마저 남기지 않고바람에 날리며 떠나려는내 황혼의 그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