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하늘에서 보내온 편지) 79

불꽃축제

프로메테우스로부터 불을 건네받은 순간하늘 향해 손짓하는타오른 불빛이 행여 그 빛일까날것그대로의 순수한 아름다움제 몸 태우는 비장미*혓바닥 날름거리는불의 뜨거움도 알기 전아름다움에 취해 손 내밀다가화들짝 놀랬을 거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꽃인들열흘을 넘기지 못한다하여화무십일홍이라던데밤하늘의 불꽃이야더 말해 뭘 할 것인고피어오르는 절정의 순간은어느새 사라져버리고유한한 시간이 아름다움인 양예술의 형태로 활활 타고 있다*슬픔과 함께 숭고함이 곁들인 아름다움

지진과 해일

땅이 흔들리고 물이 넘친다막을 수 없을 재앙들이산더미처럼 급하게 밀려든다지축이 흔들리고굉음과 진동은어느새 주위를 혼돈으로 몬다재앙이 핥고 지난 자리는금새 아수라장이 되었고시신들은 장사진을 이룬다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죽음으로 내몰린 푸른 생명들재앙앞에 펼쳐진 죽음이다슬픔에 통곡하고 울부짖는 그 절규야말로 아비규환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폐허가 되어버린 현장이 아닌인간의 근본적인 치유다부르시는 신의 음성이아픔을 당한 이들과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임하기를 바랄뿐이다

제비꽃

우연히 꽃 한 송이 본다 한참 드려다 보고 이모저모 훔쳐보지만 어느 구석 하나 제비와 닮은 곳이라고는 한곳도 없다 작고 앙증맞은 제비꽃이 보랏빛 날개 저은 작은 제비 한 마리로 착시를 일으키는 동안 행복감에 취해서 앉았다 주저앉았다 하며 한바탕 웃음을 자아낸다 삭막한 세상이련가 감성이란 게 잊었나 싶었던 게 갑작스레 따뜻한 감정을 불러 마음이 적잖게 행복하다 암울한 세상이 우리를 가만 두지 않고 자꾸만 치근대지 않는가 이럴 때 그저 꽃을 한 번 닮아 보기로 하자 꽃이 있기에 즐거우니 그 마음 또한 꽃이 되지 않겠는가...

초가을

언뜻 쳐다본 하늘은금세 더 높아 보이고구름은 새털 이슥한 밤찬바람 쐬고 잠들었다혹여감기가 방문(旁門)을 하겠구나 가을인 것을더위 속 몸부림이 끝난 자리미련과 기대애매모호한 마음들이 판을 벌린다 아쉬운 듯가리 늦도록 여름을 찾아이른 서두름은가을 정취를 찾아 나선다 발걸음을 따라 떠나는 산하얀빛 억새꽃이 얼굴을 내미는 가을때 이른 부끄러움이홀가분한 전율에 떤다

무정한 세월

구름처럼 지나가는바람 달리는 풍경잊은 듯 만 듯 채념해버린 세월 폼 내며 조금은 재미나게살 것을감사하며 또한 즐기며 살 것을 잘 살아야 했었는데베풀어야 했었는데빼앗긴 것들 안타깝지 않은가사정없이 가버린 세월야속 하구나 세월을 거스릴 수는 없을까마지막을 불태우는 거친 호흡이만추의 깊은 골짜기를 휘감아 돌 때떠나갈 길 그때가 오면그래도 할 말이 남아 있으니행복했었다 해야 하겠지 쌓인 낙엽을 세월이라 하는가솟아오른 새싹을 생명이라 하는가아웅다웅 애쓴 세월 그래도 후회롭구나무정한 세월

한가위

달이 차오릅니다 투박해서 따뜻했던 어머니손길처럼 보름달빛처럼 덩그러니 휑한 가슴에 부풀어 오릅니다 달의 마법에 홀려 지독한 향수병 가슴앓으며 눈에 머금고 심기위해 향하는 발걸음이 조급해 집니다 달이차고 기울기를 되풀이하여 가고오고 만나고 헤어지는 길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의 말처럼 정과 인정이 넉넉하게 익는 풍요롭고 여물어진 만남이기를 하늘의 씨앗 보름달 받 손으로 송편 반달 접어빗고 오롯이 홀로 둥글기 보다는 반쪽이어도 함께 하는 넉넉한 마음입니다 솔 향 푸르게 배인 얼굴에 사랑과 행복 가득 채우는 한가위 소 넣기 전 보름달은 곰살궂은 우리의 고향입니다

염불청(산)

이곳 염불청에 와서임을 불러보았다그대는 이미 낙엽으로 져 버렸지만님 향한 그리움은 지지 않았다발 밑 홍엽의 단풍들이슬품의 융단길을 만들고투명한 딸각돌 계곡물 속윤기 흐르는 자갈들이아품으로 남아있지 않은가삶의 먼 길에 난 임을 잃었고남은 건 오로지그것 대신 상처를 얻었으니살가운 미소로 널 찾기 보다 마음으로 널 기림이 더 낫겠는가덧난 상처 매정히 산자락에 깔며발걸음 허둥거리며넉넉한 마음 하나 얻어 보려깎아지른 벼랑위의 나무를 본다한 생을 함께 못 할 인연이라면척박한 땅일수록 꿋꿋해야 한다는 걸비로소 이렇게 깨닫고 돌아선다

고향생각

신작로 큰 길 밑 파란 바다 갯바람 불어와넓은 들 나락 물결치던내 살던 그곳이 그리워진다 배추 속노란 속살이 피며녹음이 질 무렵언덕배기 그 크고 작은 감나무따사로운 햇빛이 걸쳐 놀고가을을 재촉하는 마지막 숨결이늦깎이 꽃들로 지천을 이루어아침이면 꽃피던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이바지 가장이 젖어도 좋던 들 길 무너진 폐가금 간 돌담길 틈새로적막이 떨구고 간마른기침 콜록이는 소리 들리는 그 곳지금은 낯선 사람들이 거닐까 내가 정 두고 온 곳 인줄도 모르고... 때 묻지 않은 서정에 아른거리는어릴 적 내 고향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