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墨香) 56

모래시계 5

해운대 온천센터에서 보았던수십년 되어가는 모래시계노래하고 있을 젊은 날의꽉 찬 모습 흘러내린 지 오래다생명의 시간들이 먼지처럼 날아가고분말 텅 빈 항아리에허무의 정적이 쌓인다삶이 짧은 외마디 남기고어둠의 터널을 신속히 지나는 기차모태에서 시작된보이지 않는 재깍거림에도세상의 기쁨이었던 그대꿈과 욕구가 바람처럼 빠져나간고무풍선이 땅바닥에 눕는다구름 되어 하늘에 날다더러는 함박눈 되어 하얀 세상 만들고또한 비 되어 목마름 축여주었던그대는 모래시계알갱이 마지막 초침 속으로 진다석양의 나뭇가지에 걸린붉은 해가 진다

묵향(墨香) 2019.11.02

빈자리

쏟고 나면 다시 채우고비우고 나면 또 그 자리빙빙 도는 물레방아처럼흘러간다 살 같은 세월이이리해야할지저리해야 될지분간 없는 비바람 속때론 웃을 일 있었으나울 일 더 많았었네젊음의 치기로질퍽이던 삶 견뎌내고절개와 지조로 살아온 세월공 수레 공 수거를내 모른다 할까만지워지면 찬바람 일렁이고돌아가면 쓸쓸할 수밖에아무 기억 없는텅 빈 의자 같은

묵향(墨香) 2019.10.29

갈대 5

까끌까끌 날리는 사무치는 연(緣) 붙잡고어딘가에 마음 둘 곳 없는한낱 허울이라는 것을 알기에탈색한 겨울 죽도록 잡아 비틀며갈꽃 허공을 박차고 오른다포효하는 야성의 성난 파도처럼길섶에서 하늘거리면흔들릴망정 꺾이지 않는다고서걱이며 비틀대는 칼춤을 춘다안달하며 속삭이는 바람결먼 산을 기웃거리는 동안산이 안개를 벗아나 침묵하고그 안개 천천히 길을 연다나상의 춤사위 휘젓는백포 갈대의 시율내 마음 깊은 곳에서고고한 환희로 치솟는다

묵향(墨香) 2019.10.26

녹차밭 5

서편제 판소리 한 대목 어허이 폭포수 득음정지나 산 나이테 두른 차밭 골 오르면 차 꽃 튀밥처럼 터지는 지절 이슬 같은 꽃 사과가 대롱대롱 초가을 색 품으며 익어가고 척박한 차밭 일구다가 청산에 묻힌 두 봉 어르신의 고단했던 삶을 생각한다 호위무사 삼나무 편백나무 좌우 빽빽하게 들어서 잇고 숲길 아래 물봉선화는 촌색시 수줍은 치맛자락처럼 연분홍빛 봄소식 같다 시 동행이 된 시인들과 녹차 아이스크림 나눠보며 나도 가고 너도 가야 할 연애사 이별노래 부르며 녹차 축제장 터 지나는데 현란한 가위춤 엿장수 가위질 막춤이 즐겁고 누더기 각설이 음담패설 익살 좋은 넉두리춤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불러 앉힌다 돌아오던 길 다관에 차를 우리며 쪽진 머리 달빛 차 따라주는 여인의 가을 향기 황차의 남도가 노을빛으로 은은하다

묵향(墨香) 2019.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