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물 든 오두막 초여름 산그늘 내려왔던 길 돌아보다가 목 고개 젖힌 산길 어디쯤에 초막 하나 짓고 싶어지네 구름 산 양떼 몰아가는 저녁 언덕배기에 돌아오는 사람 없어도 달맞이꽃 피고 별빛 더불어 환하여 시詩 흘려 쓰는 원고지 칸칸마다에 풀물 든 그리움 채우고 싶네 고라니 살찐 뒷다리 일몰의 능선에 풀어놓는 방목의 밤 찾아와 풀벌레 울음 지쳐갈 쯤 나무넝쿨 엮은 침대에서 헛된 꿈 전혀 없는 고운단잠 들고 싶어지네 6월 제비와 참새 2022.08.17
가을에는 울고 싶다 한 나절 밀짚으로 엮은 여치집 속으로 들어가 초가로 엮은 처마 끝에 곤충 가슴의 맥박 떨판을 빌어 *찌르레기 처량한 울음 반열에서 실컷 한번 울어 보고 싶어지네 슬프지도 소란스럽지도 않게 벌레소리 듣기 좋은 한철 맑은 생 울음들에 도취되어 가는 호박꽃 초롱 환한 밭두렁과 무논에 개구리 떼 합창에 간간히 끼어드는 가을밤 우렁찬 소리의 소통 찌르륵 찌르륵 찌륵 찌륵 은밀한 밀교의 접속으로 사랑의 암호를 타전하다 울음소리, 그 파장을 조율하는 족속 격렬한 울음 유전자들 난생 그리움을 문지르면 묘연한 노래가 돈다하든가 *지르레깃과의 새 9월 제비와 참새 2022.08.17
출렁이는 가을 가을이 출렁이는 들녁엔 받아논 밥상 같은 알곡들이 넓은 논배미 마다 곳간을 채우고 종소리 들리는 초등학교 글읽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산머루알처럼 까맣게 익어만 간다 햇님 달님 놀다간 호랑이 피 붉은 수수밭지나 송아지 부르는 밭두렁에 노란 햇호박이 긴 탯줄을 감고 코스모스 핀 신작로 길 따라 고추잠자리떼 날으는 하늘 찌릉찌릉 페달을 밟으며 열무단 싣고 장에 가신 아버지 오늘은, 은빛 칼치 한 손 들고 밀짚 모자처럼 웃으시며 자전거 타고 오실것 만 같은, 가을... 10월 제비와 참새 2022.08.17
빨간 우체통 얼마나 뜨거운 사연들을 그곳에 두고 갔으면 우체통이 저토록 붉어졌을까 그대 마지막 타오르는 순정의 불꽃 그 선홍빛 정열 쏟아내며 재깍 재깍 타임 채널을 돌려놓은 기다림의 온도 잘 구워진 식빵 같은 오븐 속에서 앗! 뜨거 사랑의 편지 한통을 막 꺼내고 싶은 날은 우체통, 그 설레임으로 오늘도 나는 빨갛게 몸이 달았다 7월말 제비와 참새 2022.08.17
춤에 대한 변명 이따금씩 아주 이따금씩 태양을 태운 흑점黑點 그 무늬 *레이스race 아련한 불그스레한 캉캉 치마를 입고 접시꽃처럼 춤을 추고 싶을 때가 있다 무더운 날 내리쬐는 땡볕 머리에 이고 맨드라미 붉은 볏처럼 흔들며 때론 몸 닫힌 물처럼이나 출렁이고 싶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타는 듯한 갈증 그 꽃 같은 열기가 울컥 생피로 변하려할 그 때 누가 흔들어주나 해변의 정사 섹시 온 더 비치의 감미로운 환상 유리잔 속에 신비로운 색깔 되기를... 멈출 수 없는 순간 초면의 그대와 잘 섞이도록 춤사위에 고독과 그리움 시와 우울 조용히 몸으로 녹아들면 이따금 나 이따금씩 춤 추어보고도 싶었을레라 *경쟁 7월 제비와 참새 2022.08.17
세월호야 흐르거라 아이들아 차라리 오지 못할 바엔 돌아오지 못할 강물이 되어 지향 없이 흘러서 가거라 거침없는 저 강줄기 따라 어디론가 표표한 정처도 없이 내 설운 눈물처럼 흘러가서 미루나무 가슴으로 우는 고독한 모래 둔덕의 그 유장한 하구 여울터 갈잎 마른 몸 비비는 소리로 내 쓸쓸한 노래가 되는 어느 물 어귀를 만나거라 너희가 죽어 늑골처럼 아늑한 그 곳에서 내 아이들아 저물어 지친 발길 머물거든 한 무덤 들꽃으로 이 세상에 고이 피어나다오 4/16 제비와 참새 2022.08.17
탱고 쿵짝 꿍짝 한이 서린 음악 농경 민족의 춤은 상체를 움직이고 서양 유목민의 춤은 하체를 이용해서 춤을 춘다 탱고는 발을 이용 해서 경쾌하게 움직이며 스탭을 밟고 상체와 하체를 자유롭게 이용해서 쌍쌍으로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한다 세계인의 놀이 문화다 탱고는 춤의 종착역과 블랙홀이다 쿵짝 쿵짝 발 맞추어 돌고도는 세상 한이 서린 춤 유쾌한 몸 놀림으로 쿵짝 쿵짝 9월 제비와 참새 2022.08.17
백 점만 주는 비 쫙쫙 그어 틀린 시험지 같은 그 빗발치던 폭우 속 세상 나 살면서 쏟아낸 토사물 같은 시의 변주變奏에 따라서 매겨지는 평점들 생의 마지막 같은 바닥에 둥근 발자국들 무수히 다녀가겠다 뭘 그리 잘못을 했는지 모두가 잘못 쓴 답안이 된다 호수의 배경에 서보라 무수한 동그라미 남기며 모두 맞다맞다 그래 옳다 공표하고 물위에서 비는 죽는다 백점만 퍼주는 비 그 수면의 긍정 바탕으로 쏟아낸 토사물 같은 시의 변주에 따라서 매겨지는 평점들 생의 마지막 같은 바닥에 둥근 발자국들 무수히 다녀가겠다 4월 제비와 참새 2022.08.17
상사화 1, 상사화 내 사람아 내일이면 죽어도 좋으리 불갑산 상사화피는 평원에 가보아라 그 찬란한 가을의 교향악이 펼쳐지는 담홍빛 정원으로 가서 하늘 향해 치솟는 상사초를 찾거라 한 마리 뿔 높은 어여쁜 사슴이 아니어도 순 하디 순한 산 노루 눈빛으로 휘황찬란한 눈부신 평원을 보거라 찬탄과 갈채로 일어서는 먼 우주의 객석에서 환호성으로 맞이하던 감동의 그날은 일생에서 더딘 막차처럼 좀처럼 찾아 오지 않았다 이 눈부신 화해의 손짓들 앞에서 누가 누구를 탓하고 미워하며 서로 용서 못할 이유 무엇이 있으랴 산길 에두른 하늘 재 불갑의 성역으로 가는 길 무엇이 이토록 생의 환희로 들뜨게 하고 아리도록 가슴 저리게 하는지 그 곳에 가보고서야 말하리 끝없이 펼쳐진 상사화 피는 평원에서 마음에 욕되고 삿된 것들 다 버려보리.. 제비와 참새 2022.08.17
눈물이 흐릅니다 바다와 땅이 울고 있습니다 울지 않으려 해도 눈물이 흐릅니다 눈물은 꽃송이 되어 떨어집니다 방글방글 웃으며 하얗게 피듯 엄마아빠하고 달려오던 꽃송이 아무리 참으려 해도 눈물이 흐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보석 영롱한 진주 같은 것이 방울방울 떨어집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가슴 환히 비추던 아침햇살 눈물줄기 따라 무지개다리를 타고 하늘로 오르고 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되어 손 흔들며 높이 오르고 있습니다 4/16 제비와 참새 2022.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