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제 5집 73

그 자리에서

바람 부는 날그대 그리워 찾은 강둑임이 오는 소리 들리지 않고단지但只 반겨주는 건하얀 갈대 부딪는 소리여라부르면 다가올 것 같은그대 아름다운 이름이하늘에 올라가 별이 된 임아!그려보는 지독한 사랑의 갈증오늘도 풀 냄새 가득한갈대 핀 강변 길을 걷습니다언제부터인가그대를 기다리는 불면의 밤은어지러운 상념 속에나를 밧줄로 묶었습니다달빛 아래 별빛은 산허리 감고기다림이란 불은 활활 타 올랐습니다가슴 속 하얗게 핀 긴 그리움이바람 되어 흩어지는 모습강가 물안개 속 젖는하얀 갈대의 기다림입니다.

2020 제 5집 2024.09.25

커피를 마시며

거무튀튀한 향기에 알맞은 이름이 있다 아메리카노,그 내음의 중독을 아는가함께 있어도 고독한그 중독의 시간을 아는가비끼는 석양의 그림자 뒤로소멸하는 빛바랜 젊음을 아는가아스라이 멀어지는커피 향 같은 날들을 아는가허전함 채우려는 커피를 마시면심장 사이에 박힌 이름 하나목이 메인다 쉬었다가마시다가다시 이어지는 언어의 유희처럼말과 말 사이에말이 끝난 뒤에미처 다 하지 못한 말 다음에또 한 모금,아메리카노에 중독되고 싶은 밤나는 그립고 너는 없는이 쓸쓸함기어이 끊어낼 수 없는이 고독함이지

2020 제 5집 2024.09.23

물 때

지시한 바 없는 시간인데누가 명령한 바도 없는데무거운 몸 이끌며부지런히 들었다가 나갔다가 한다 우리가 말하는 물 때는바지런히 죽고 사는원래의 약속 같은 세월부서지고 흩어져도오는 시간 잊지 않고떠나는 시간도 안다그토록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누가 오라 했는지아니면 가라 했는지쉴 새 없이 부딪는 저 무량의 생멸무섭게 달려들어 포말로 부스는 일사람 사는 모습도 저처럼인지 어울리지 않는 생을 살다가힘겹고 고달프다 했을까질긴 인연 사는 채몇 년인들 못 살까간만 차 큰 저 무인도에갈매기 날갯짓 넉넉하다

2020 제 5집 2024.09.23

가뭄비

피곤에 지친 몸한 몸 한 몸 다른 몸입니다함초롬히 내리기 원하나때에 따라선 비틀비틀구부러진 길도 마다하지 않습니다색깔을 드러내지 않아어디서든지 잘 어울립니다나타내지 않고 젖는 편이지요허락을 하든지 말든지아무 데나 스미지도 않습니다시간이 되면 오려니 착각은 마세요그대는 선택할 권한이 없으니까요나를 간절히 원할 땐어쩔 수 없이 내려 주기도 합니다길다란 몸 원하는 곳만찾아가기란 쉽진 않아요날리다 떠밀리다마침내는 가고는 맙니다그리고 그대의 귓가에청각을 일깨우곤 하지요애가 타도록 목말랐던 소식한 사나흘 퍼붓고 가겠습니다

2020 제 5집 2024.09.23

소매물도 좃바위

밀물과 썰물에일어섰다 앉았다 선상에서 흘러나오는 말은아니,저게 좃대바위라 한다갯바람 대신 된 마파람에파도가 하루에도 수없이물보라 곡선 만들며성 내듯 일어서는 곳이라며저게 어찌 좃대가 맞겠는가차라리 조 자字 밑에시옷이 아니라 지읒을 붙인 게 낫지 외안산을 품고신선처럼 앉아서기이한 형상의 연봉과바위들을 부르는 물짓흰 깃발 철석이며흰 꽃만 피워보지만그러나바칠 사랑 만날 길 없어돌아 앉아 울기도 한다네 포말꽃 왕창 피우는나는 무인도반 만 가져도 좋을 사랑갈매기는 알고 있을까

2020 제 5집 2024.09.23

능소화야

담장 밖으로 나팔 소리낼 것처럼몸 곧추세워 구불구불 허리 펼 때면어떤 말로 저의 속셈을 대변할 수 있을까곡예사 춤사위 같은 바람에 휘청,소화야!구중궁궐 넘자고 긴 시간을나팔 소리 불어보려 하였더냐떠도는 말 불러 모아 옳소이다 옳아왕이시여! 그 말이 옳소이다보내보고 싶었던 간절함이던지침묵의 시간 흘러 귀가 열릴 때까지들어주십사 부르고 불렀을까저 수많은 입 벌려 하소연 하였으나아는 듯 모르는 듯도톰한 입술 쉴 새 없이하르르 또 하르르소화야!능을 넘지 못한 능소화야너 어찌 밟고 지나는빗방울인들 원망스럽지 않겠느냐

2020 제 5집 2024.09.23

멀 구슬 나무

이때쯤, 코레일 공원 가는 길에장미꽃이 늙어가면 짓궂은 바람에 멀구슬나무꽃,수백의 별똥별이 순식간에 떨어져걷는 길을 온통 별꽃으로 융단을 깐다 샛별이라는 별명 가진 여인이아주 오래 전별똥별처럼 나에게 떨어져온 세상 환했던 기억이 났지 장미도 지고 멀구슬 꽃도 지고괜히 울적해서그게 그 여인 향기 같아서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았더니연신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발밑에 자리 잡는 꽃들온통 샛별이구나 은하 강처럼 흘러가는 오월을 보내며코끝에 샛별 향기 길게 매달아본다

2020 제 5집 2024.09.23

뻐꾸기

저 우는 소리가 그 소리인가어릴 적 고향에서 듣던 소리산봉우리 넘어 또 한 봉우리 넘어여기까지 넘어왔단 말이지 소싯적 생각에 잠겨보니그때 들었던 소리아니, 주고받는 찰진 웃음소리우는 건지 웃는 건지세월을 넘나들듯가고 오며 목청 돋우고 있구나 땅거미 느린 걸음으로 깔리는아카시아꽃 향기로운 시간잠시 오월의 시간이 서성이는데저 소리 참 정겹더구나 둥지 없는 설움 탁란을 하고우는 줄만 알았는데정말 우는 줄만 알았어

2020 제 5집 2024.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