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제 5집 73

제 5집

팔영산여덟이나 되는 봉우리에바위 꽃인지 이끼꽃인지바람에 살부비며아롱 아롱 피었다봄볕 게릴라처럼 스며든편백이 울울창창얼음 녹아 흐르는눈석임 어릿어릿한 길을자분자분히 걸으며꽃봉오리 깨우듯 지나간다팔영의 기이한 산 준령이하늘 강 건너는 징검다리로 보이다가이따금 얼핏 연꽃숭어리로 보이더니라신비한 이방인의 눈처럼해창만의 푸른 눈빛과 마주치며먼 산 단숨에 달려오는선녀봉 유영봉 살짝 지나서귀에 익은 옛 관악기 생황소리 접한다어느 신선이 내려와 입맞춤 했을까파르르 떨리거나 걲어지며열일곱 대통 속 흐르는 생생한 울음그 소리에 내가 어이애잔한 마음이 없을손가동백섬에서우산을 두드리는 는개비가겨울비인지 봄비인지가늠이 어려운 동백섬에서어디서인지 모를 꽃향기가빗방울에 은은히 젖어든다꽃송이에 부리를 대고동백류를 빠는 건지 먹는 건..

2020 제 5집 2024.10.08

황혼의 때에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때론 행복했습니다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꽃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해 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지금 삶이 힘든 당신당신은 이 모든 걸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후회만 가득한 과거와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지금을 망치지 마세요오늘을 멋지게 살아가세요눈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2020 제 5집 2024.09.25

산에 오르다

산기슭 서성이는 구름 내려다보고어디로 가느냐 물어도 대답이 없네산등성 한 가슴 품어보려 하였으나산이 나를 바위에 눕히고큰 산 품겠다는 호기를 벗기네 품을 수 없는 것이 이것 뿐이든가발아래 밟아 두었다고 내 것인가이제야 푸름 가득 하늘을 마시니그리운 얼굴들이세월의 모퉁이를 돌아가네 산 등성에서 만난무등 태워 주시던 아버지우거진 숲 아늑한 골짜기에서사랑으로 다가오시던 어머니험한 길 주저 없이 손잡아 주던 친구들, 보고픈 이름 하나 태우지 못한 부실한 등주마등 스치는 것마저 품지 못한 비좁은 가슴누굴 위해 내밀 수 없는 연약한 손이시간을 스쳐서 지나간 몸짓 추스린다

2020 제 5집 2024.09.25

짧은 인생

종착지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올 때어찌 편안한 기쁨보다는땅 꺼지는 한숨이 쉬어지는 걸까십 년 고개 두 번쯤 남아있을 즈음에느껴지는 허탈한 이 기분넘기 힘든 십 년 고개 몇 고개턱넘어온 지 한참 되고서야사방팔방에 보이는 것들이어찌 모두가 슬퍼지는 것일까젊음의 추억들도 눈물이며목멘 사랑의 그리움도 슬픔인 것을, 목숨 건 그 무엇들이한없이 서글프고 가소로운 건무슨 이유에서인지진작 알지 못했던 거 무엇때문이더냐혼자라는 말혼자 가는 길되돌릴 수 없는 걸음 앞에서한없이 작아지듯 힘없는 작아지며 슬퍼지며 외로워지며, 나의 인생이라고나의 인생이니까내가 내 자신을 정확히 볼 수 있는경건의 시간은백년도 아닌 생이지만기꺼이 살아내어야 하지 않겠는가

2020 제 5집 2024.09.25

늦깎이 시인

잠들지 못한 기척이잠들지 않은 시간을 깨운다어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지천명의 육신 벗어 놓은 채귀를 찾아온 쟁쟁한 시어들, 시간을 밀쳐놓고 엉키는 말과 말들이늦깎이로 시문학에 임문한 터라그 숱한 시인들 가릴 것 없이기경한 땅 다시금 파 엎는다 이미 갈아 엎는 땅 씨알도 없을 낀데아무리 파 봐야 헛짓거리라이왕 시작했으니 물줄기 하나쯤터져야 되지 않겠소보고 듣지 않았어도술술 풀어놓은 시詩 한수어딘가 있을 시詩의 물꼬  쩍쩍 갈라 터진 마음 밭이슬슬 허물어진다

2020 제 5집 2024.09.25

주마등

우리 어릴 때 적오줌이 마려우면달빛 고요한 한밤중에 일어나토방 및 마당에 서서 그냥,,, 나서 하늘 위 초롱초롱 빛나던별빛은 보았든가별 하나 별 둘 헤이며눈망울에 담아본다면멀고도 아득한 그리움이초롱초롱 빛났었지 추운 겨울밤문풍지 떨리는 황소바람에화들짝 놀라 잠이 깨었을 때부모 곁에 곤히 잠든형제의 따뜻한 정을 보았든가 옷 솔기 꼭 잡고쏠쏠한 재미 맛보는 듯세월 멀어진 길제를 벗어나별빛 같은 고운 정이 묻어난정겨움이 가슴을 스쳐 지난다

2020 제 5집 2024.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