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시(靈性詩) 77

나를 빚으소서

나는 당신 손에 한 덩이 진흙 당신 뜻대로 빚으소서 깨어지기 쉬운 천한 옹기 물밖에 담을 수 없는 항아리지만 아름다운 꽃 품고 있는 당신 곁에서 웃고 있는 꽃병을 결코 부러워하지 않겠습니다 천년의 향유를 담은 진기한 옥합으로 태어나지 못해도 슬퍼하지 않겠습니다 주여 나의 모난 것 깎아주소서 아직 거칠어 매끄럽지 못하니 긍휼의 손길로 어루만지소서 당신의 궁전 중앙에 빛나는 화려한 불빛 아니어도 뒤란 어두운 골 홀로 비추는 작은 호롱이라도 빚어 당신의 기름 가득 채워 환한 빛 밝히게 하소서

생명강가에서 5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고 노래하리 그 생명의 강가에서 손의 손 맞잡고 한가지로 기뻐하리 그 생명강가에서 무릎 꿇고 우리는 경배하리 생명강가에서 그대와 나란히 영광의 길 걸으리 슬픔 없고 아픔 없는 곳 늙음이 없고 이별이 없는 영생의 물결 출렁이는 보좌 앞 그 생명강가에서 우주의 비밀 풀어지고 신비열리는 무궁한 생명이 있는 그 생명강가에서

거울을 보면

낯설지 않는 거푸집하나 보인다 머지않아 자연으로 돌아갈 것처럼 비바람에 젖어 상하고 낡은 모습 아직 버리지 못해 들락거린 흔적은 문 쪽에 있고 주인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는 알고 있다 행적은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달려왔는지 얼마나 달려가야 할지, 세상에 가득한 그대 사랑함도 사랑하지 못함도 나에게 보이고 있는 거울이라 창조주 영광에 이르지 못할 몸뚱어리 몰골 비추이는,,,

신비라 한다

바다는 땅을 보고 땅은 하늘보고 살아있는 것 죽어있는 것 서로 신비라 한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저 흔한 돌멩이 하나도 보석이고 우리 또한 신비가 되어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영혼 깊은 곳으로 달려가라 내안에 그대 있고 그대 안에 내가 있다 우주 안에 내가있고 내안에 우주가 있다 이 땅에 나를 보낸 창조주 내 안 경외의 보좌에 거하시니 분명 우리는 먼 옛날 한 가족이었으리

축복의 통로

나눌수록 가까워지리라 나눌수록 기쁨 넘치리라나의 작은 것을 통해마음 나누고 웃음 나누면슬픔과 고통 가벼워지리라내 알곡 나누면주께서 곡간 채우리흔들어 넘치게 하리나는 부름 받은 축복의 통로어두운 영혼 외로운 사람하늘 문 열어 주리라주께서 그 몸 찢어생명의 길 여시었듯이나눔을 삶에 의미로 두는 자행복이 그득하여라가장 귀한 것오직 비움으로 얻는 것위로부터 내리는 은총으로그대 영혼 풍성해 지리라

가을나무의 고백

가을나무의 고백- 몰랐습니다그대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진정 몰랐습니다그대 숨결 없이 잠들 수 없다는 것 그대 떠난 후엔텅 빈 하늘이 보일 뿐시간은 멈춰버렸고적막 속에 갇힌 모든 것들이세월 속 나의 강물로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 나는 알았습니다그대 없이는 내가아무것 아니라 하여도붉은 잎들 기약 없이침묵의 나라로 떠나고신기루처럼 불멸의 추억황금빛 영혼 기우는 빛살에서꿈을 꾸고 있다는 것 새 생명 부활의 꿈을

새해의 기도-

다시 새해가 밝았습니다 태양은 힘차게 제 갈 길 가고 해 아래 저 바다는 제자리에서 푸르게 파동치고 있습니다 금년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부르신 길 보내신 길 잊지 않고 꼭 가야 할 길을 가게 하소서 명하신 자리에서 파도치는 바다처럼 때로는 힘차게 때로는 고요하게 저 생명들을 품게 하소서 금년에도 하늘에는 비바람 폭풍우 난무하고 몸부림에 땅은 홍수와 눈보라 밀려오고 땅속은 지진과 화산폭발로 불쌍한 지구가 흔들려도 새들은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노래할 것입니다 주여! 저 새들처럼 날아올라 맑고 진실하게 찬양하게 하소서 저 들판에 가난한 들꽃처럼 웃음 또한 잃지 않게 하소서 주여! 이 해 다 가고 노을 붉게 물들 때 주님의 섭리와 인도하심따라 감사하는 저녁을 주소서

나그네의 삶

나그네의 삶 힘 겨워 뒤 돌아 볼 힘이 없을 때그때에는 살며시 당신의 사랑을 꺼내보겠습니다걷다가 눈물이 앞을 가려 볼 수 없을 때나를 업고 걸어가신당신의 발자국을 생각하겠습니다끝없이 주룩주룩 눈물이 흐를 때당신 손 붙잡고 흘렸던 그 순간들을 기억하겠습니다괜찮다 당신이 내게 말씀하시면난 당신의 눈빛에 하르르 녹아조용히 말없이 스미겠습니다.

밤바다

밤바다 무채색이 나불대는밤바다 바라보니바람에 비위脾胃 맞추던한낮의 바다가 생각이 난다거센 파도 번갈아들어마음 요동시키던 바다한동안 깊이 생각하다가우두커니 밤바다를 본다아득하듯 가까운 듯선명한 불빛이 하나이내 차츰차츰 다가서는데그 빛 뒤따르는 거대한 모습, 낮에는 전혀 생각지 못한말씀으로 풍랑 잠재우고물 위를 걸어 제자 안심시키던능력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내세의 길

웃음 없는 낯선 곳 어둠움 깊게 드리운다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초행길 걸음 막막한데어차피 가야만 하는 길이기에숨 죽여 이별을 고한다허방이 있어 실족하게 될까물웅덩이에 빠지지 않을까가는 길 걱정 두려움 말라며다시는 이별 없는 재회그리운 이 만나러 가는 길이니불빛 휘황찬란하여영광의 빛 가득도 하리라좁고 험한 세상아등바등 헤매었을지라도그대가 걸어가는 길은계명성처럼 밝게 비추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