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바램 무위한 회색의 나날 해와 달은 어김없이 떴다가 지고 스치는 세월 덧없이 지나가네 어느 뉘 그런 날 막을 수 없고 잡을 수도 없는 한 해의 정초를 맞이하게 돼네 뒤 돌아보니 회한이요 마음의 거울을 보니 깊이 패인 주름 뿐인 것을 내세울 것 없는 비워지고 깎인 빈털터리 온고지신, 새해의 바람을 가슴에 담아보네.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27
겟세마네 동산 깊고 호젓한 고샅길 흙과 한 몸 이뤄 듬성듬성 박석이 깔렸더라 험하고 억센 바윗돌 애써 들추어내지 않고도 어질디 어진 흙 친구삼아 하늘 향해 높이 솟아있는 산 지친 몸 쉬게 하고 가쁜 숨 고르게 되니 나만의 반석이고 쉼터라 깊은 절망 잠에 취하고 하늘을 찌를 듯한 핏방울의 기도소리는 난장터 같은 절규 바람과 함께 산 속을 헤매는데 일상에 묶인 죄악 안개 같이 사라져 버릴 불 밝힌 꽃등이고 미래의 천국이라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26
가을날의 기도 이름 없이 흔들리는 들풀 하나를 위해서라도 주님, 서두르지 마소서 아직 덜 익은 영혼 젖은 이슬이 차가울 뿐입니다 작은 씨앗이 생명의 입 열 때까지 풀잎 한 포기 포기에 습한 바람 머물게 하시되 열매 알알이 영글게 하소서 온땅 가득한 푸르름이 삭풍에 여위어도 불모의 땅 일구는 영혼 기쁨으로 노래하게 하소서 불타는 가을 날에 이별의 만찬만은 외롭지 않게 하소서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26
묵상 묵상해보자 피로 물들어진 그분의 등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홍수물길 같아서 우리의 구원하심이 자비요 표상이더라 양 손에 못 박고 가시관 머리에 꾹꾹 씌워 자주색 옷 만들었으니 하나님 차처하신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이라 그분의 흘리심으로 자유함 얻었으니 은총이고 사랑이라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26
아버지의 기일 여름비 추적이는 앙가슴 쓸어내리는 동안 아버지 생각이 핏빛으로 내립니다 황망히 피해가는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짓누르는 설움 내리는 빛깔로 섧습니다 아물어들지 않는 신음소리 가녀린 그 기운이 온 땅 구석구석에 급하게 고여 옵니다 혼돈의 늪 향하여 서럽도록 내달릴 때면 허탄(虛誕)한 현실 아련한 모습들은 울렁울렁 파도를 이루곤 합니다 아른거리는 눈빛 한 송이 꽃으로 맺혀 가슴속 깊은 곳에 연민으로 남아 있습니다.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26
숨 어제 지나갔던 바람 내일도 찾아올 건지 아니면 잦을 것인지 그 바람 다시 찾아와 오늘에 안간힘 쓰고 있다 켜켜론 머리칼 쥐어당기듯 흔들며 춤사위하는 바람 세월 일일이 헤아리며 지난 날을 회한하는 것일까 높은 곳에 오르다보면 드세게 불어대고 낮은 곳에 머물면 잔잔히 부는 바람 이따금씩 잊어버린 바람 또다시 찾아올 바람 자꾸 쇠하여지는 바람 언젠가는 소멸하고 없어질 바람 어제 스쳐지난 바람이 내일에도 찾아올 지 아니면 그치고 안 올 지 그 바람 다시 찾아와 안간힘 쓰고 말 일이지 켜켜론 머릿칼 쥐어짜듯 흔들며 춤사위하는 바람아 세월 날 일일이 헤아리며 지나간 날 회한할지 높은 곳에 이르면 드세게 불고 낮은 곳에 머물면 간간해진 바람 이따금씩 잊어버리기 쉬운 바람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26
산벚나무 산비탈에 햇솜처럼 청조하게 핀 꽃 서 있는 나무에 저절로 눈길이 멈추어진다 눈에 띄지 않게 서 있다가 봄만 되면 온 힘 다해 끄트머리까지 기운을 내민다 한 잎 따 향기 맡고 싶으나 산벚이라는 이름에 어쩐지 품격이 떨어지는 느낌인데 세월에 변함도 없이 그래도 품세는 전통의 아름다움이다 가치를 알아주건 말건 고유성을 지켜 온 산 벚나무 피던지 말든지 산비탈에서 환할 뿐이다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26
하늘로 가기 전 하늘에 가기 전 소리 한 번 지르겠다목소리 크게 내겠다군림하려는 사람들 앞에서한 번 쯤 당당해 보겠다 하늘로 가기 전시뻘건 상처 내보이며앗아 간 꿈 알갱이들 모아투정거리로 삼아보겠다 살진 양이 약한 양 밀치듯언행 맞추지 못하던 자들상처 주는 일이 너무 흔했다 넝마 걸친 몸이라좋은 자리 앉을 수 없었다만삼베 올 모시적삼세마포 갈아입기 전에옳고 그름을 반드시 따지겠다.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26
고인이 된 아버지께 잊혀져가도 견딜만합니다 그리움 전혀 없는 것 아니지만 옛날처럼 못 견디게 보고 싶다든지 저녁 노을만 봐도 눈물짓는다든지 지금은 그런 일이 없습니다 어쩌다 이리 모질게 변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애잔하던 그리움 어디에 가고 이러듯 태연하게 되었는지 별 일 다 생각하며 버틴답니다 버티는 게 힘든 일일 터 때로는 좌절감 느낄 정도로 울고 싶을 때도 있다는 고백이 아닐런지요 그만치 피폐한 마음인지라 그립던 세월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내어 긴 밤 다둑이며 지난답니다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24
등산 바람 같은 바랑을 메고 등산화도 신고 모자까지 쿠~욱 눌러쓴다 후이 후이 산 오르면 마치 꽃을 본 봉접인 얀 오르는 기분이야 나만의 설레임이다 매양 한 자리에서 체바퀴 도는 것 같은 숨 짙은 시간들 잠시 탈출을 시도하듯 산이 거기에 있어 나는 그곳에 오르고 말지 힘겨우면 잠시 등짐을 풀어놓고 지푸라기 같은 목숨 구기고 앉아 한 모금 자연수를 마신다 흐르는 물에 땀이 싹 가신다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