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을(물위를 걷다) 73

벚꽃길

파도소리 가득한 덤으로 즐기는 벚꽃 길 미포 지나서 청사포 구덕포 송정역까지 걸음발이 다소 바쁘다 소 추리 갯가 미포 거슬러 설레발치는 듯 이어지면 자욱한 사연 점점이 하얗고 자지러져 피어있는 꽃이 하얀 물결로 밀려들어 나를 흥분시키기는에 적잖은 백미다 고릿하듯 싸 한 게 소싯 적 맡았던 엄마 치마폭 냄새 바로 그 냄새 같다 하얀꽃 흥을 실컥 마시는 길에 맑은 햇빛이 푸짐하다

푸조나무

미끈하고 반짝이는 윤기 가지 끝에 떨켜를 떼고 새 푸른 잎사귀가 역사를 헨다 언제부터였을까 까마득한 세월 뒤로하며 활기 내민 널 보아하니 오래 살았다는 내 자신 어쩐지 부끄럽다는 마음이다 갑갑한 세상사 너에게 비할까 그늘 가리던 생 많다만 여유 부리어 보자 하노라 오래토록 기다렸구나 뉘 보자 그리 하였더냐 400년이 넘어버린 너의 기상 우람하고 정겨운 너의 풍미가 막힌 숨통을 확! 트이게 하는구나

희망

따스한 바람이 저 멀리서 블어오는 길목 하얀 잔설이 해코지하는 회색하늘 어느 겨울 날 동박새 날아가는 길 따라 살금살금 동행을 해본다 어느새인지 빨간 호롱불 하나 둘 동백가지에 걸려있고 긴 입맞춤이 햔창이드라 영원할 수 없겠지만 어제가 있었고 오늘이 있으며 또 내일을 기다리는 기약 꿈 좋아 행복해야 한다는 바램 동백꽃 피면 봄도 한창일 거다

별이 되기란

그리움과 추억은 많고 멀 수록 아름답다며 설레발치듯 달려온 고흥 나로도 밤하늘에 별 하나 만들기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 나이 탓하기 핑계로 우뚝 솟은 산 오르긴 이미 글렀고 바다와 송림이 어울어진 몽돌해변이 좋을 것 같아 물색한 곳이 이곳이라 이 곳 명당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섬을 박차고 육지 아닌 저 하늘로 승천을 명하였고 면천을 구했다 아예 갈 지 를 말지 별 되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밤세워가며 움직이는 갈대소리만 일대를 요란하게 할 뿐

은행잎

반백으로 바래진 노년의 머리 위로 매서운 바람이 부리나케 스칩니다 솟아오르던 게개 관풍으로 외롭지 않더니 주저리주저리 털어 저리도 가난했어야 하는지 청보에 개똥이래도 이승이 더 낫다했는데 소스라치는 바람 따라 초행길 떠나는 망설임이라니 그늘 밑 조잘대던 새 떼 도란도란했던 내 이웃들이 불타는 가을빛 속으로 언젠가는 떠나야 할 저 이파리들 처럼

쌀밥나무

쌀밥나무 1 (5월) 쌀이 얼마 없는 나머지 어머니만 밥을 지어드린다면 나에게 다 덜어줄 게 뻔해서 아들은 머리를 짜냈고 마침내 마당에 있는 나무에서 하얀 꽃 듬뿍 따다 자신의 밥그릇에 담았다 눈이 어두웠던 어머니 아들도 쌀밥을 먹는 줄 알고 맛있게 잘 먹었다 하니 이 나무가 이밥나무가 되었고 음이 변해 이팝나무가 됐다 한다 달리 전해진 이야기가 있는데 이 씨(왕족)들이 먹은 하얀 쌀밥이란다 이 씨들이 먹는 밥이라면 백성들은 쌀밥을 못 먹었다는 말 하여, 그들만이 먹어온 밥(食) 이밥나무 못 먹어 죽은 자식 무슨 죄 있었을까 흰 꽃 피는 오월이 되면 움푹 페인 가슴에 한번 묻고 오는 세상 잘 먹길 바래 나무 밑에 또 묻은다 한바탕 꿈같은 생애 하얀 쌀밥 지어 녹색 이파리 위로 열심히 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