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벙 가물어 타든 논바닥어귀 동그랗고 네모난 소沼 있었지그 속에 맑은 해 있었고구름 흘러 하늘 펼쳐 지나고파아란 바람 같은 나 있었어 동맹이하나 집어던지면툼벙하는 소리와 함께 파장이 일고놀란 생명들 곤두박질치던너, 요즘도 존재하고 있는 건지 사색의 노 저었던 곳그 곳에서 나는단비 기다리며잊혀진 물꼬 돋우고 있다.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06
꿈에서 본 고향 개구리소리 물꼬걱정 하는 밤 만월 차오르듯 치자 꽃 하얗게 밤 지새고 감꽃 파랗게 열매 맺는 그리움 향한 꿈길 헤맨다 바쁘게 살았다 하지만, 반거들충이라니 챙긴 것이라곤 허름한 넝마 한 벌과 버리기 아까운 추억 한 다발 호연지기浩然之氣 키웠더니 절망 같은 삶 휘청이며 풍성함 있을까 기웃거린다 쉼표 찍을 사이 없이 일손에 매달린 일거리로 가득한 좁은 공간 그리움이라는 향수가 반가운 손님으로 찾아와 비몽사몽 날 흔들어 깨운다 시인은 못내 별 헤아리다 잠을 놓친다.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06
서설瑞雪 유난히 춥다 삼한사온 잊은 지 이미 오래, 칼바람 움츠림이 시간을 따라잡지 못해 계절 또한 미동이다 야윈 떨켜 흐느끼는 나무의 살갗 줄기 휑한 바람이 지나는 동안 봄 기다리는 인내 잦게 내리는 눈雪 차라리 서설이라 하자 지저분한 것 감추고 투명하고 맑은 호사만 있을 것 같은 예감 밋밋함 묵상에 잠겨 있다 잠깬 조무래기들의 고함소리 귀청을 여지없이 찢는다 뿌드득뿌드득 처녀설處女雪 밟는다.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06
까치(신항만에서) 더불어 살아온 자연의 숙명 종족보존의 본능과 가족계획 준비의 반란이다 문명이 인간 사치라며 아슬아슬한 전봇대 위에 방 한 칸 마련하고 얽매여 사는 동물의 세계 허접한 잡동사니 물어다 다독다독 이음새 박고 어긋어긋 철사동가리로 짜깁기 해 놓았더니 영역 빼앗은 이 누구인가 분통한 절규 애가 끓은다 반가움 기별하는 길조 어쩌다 인간의 문명 앞에 이 모양 이 꼴 되었는지 마치 내가 까치인 양 왼 종일 내내 슬퍼만 진다.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06
홍매화 겨울 짊어진 허리 휘는 아픔 무수한 꽃단장에 부리지 못한 힘겨움 사 알 짝 입김 불어주면 아득한 빛살이 꽃술 하나 밀어 올리고 그제야 봄맞이를 서둔다 흔들리는 것이라면 꽃이어도 좋고 숲길에 쌓여 가는 꽃잎이어도 좋다 깨끗함, 영혼 한 자락 차고도 곱게 붉은 피 한 모금 머금는다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06
겨울 잎새 죽으면 죽었지 떨어질 수 없단다 이미 죽어있는 것들이, 겨울나무 가지 끝 바싹 말라붙어 있는 나부끼는 잎겨드랑이 모진 바람 불어와도 떨어지지 않겠다며 안간힘쓰는 모습이라니 한정된 시간 더 참아내지 못하는 이미 죽어있는 잿빛주검 하르르 직 전 마지막 순간까지 떨어지지 않으려 애쓴 애절한 저 항거.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06
민들레 부산한 발길 끊임없이 이어지는 갈라진 보도블록 틈 새 가려하고 앙증맞다 민들레 한포기 세상에 아름다우나 발 디딜 곳 없다며 틈바구니에 돋아나는 끈질긴 저 생명 아롱아롱 잎 살이 노랗게 올랐다 연초록빛 만들어 사라진 꿈 부풀고 하나 둘 제자리에 앉아 눈웃음만 가득 봄 햇살 담아내고 있다.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06
거미인생 초고속거미줄에 안테나 망가진 잠자리가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망보던 거미 달려들어 먹잇감 옭아매는데 까짓것 먹이라야 간헐적으로 날아드는 날포랭이가 전부였지 간만에 큰 먹잇감이 걸렸다 금색 실 얼기설기 허공에 메어놓고 그네 타듯 좋아하는 거미와도 같은 생 오욕 앞에는 세찬 비바람만 있을 뿐이다.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06
맨드라미 아조아주 옛날 나 어릴 적 숨바꼭질할 때 장독대 뒤에 숨어 도톰한 꽃 두어 송이 보았지 닭 볏처럼 우뚝 세우고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호들갑을 빌어 부채춤 살짝 추던 꽃이라 정화수 한 사발 장독대에 올려놓고 뭇 세월 자식 잘 돼라 지극정성 비손하시더니 치성致誠에 타오르는 어머니 사랑 눈 가는 곳곳에 그 사랑 베어 곱디곱더라.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06
생(生) 재미있는 세상 그때그때 맞춰서 행복을 꿰매는 삶 살아있으니 서글퍼하지 말고 집착했던 욕심도 허물 벗어버리듯 훌훌 다 벗어 채워지지 않는 속마음을 비우고 비워 가볍게 하자 바람같이 가벼워 보자 세상 것 잠시 빌려 쓰다가 때 되면 두고 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거늘 작가마을(물위를 걷다) 2019.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