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을(물위를 걷다) 73

꿈에서 본 고향

개구리소리 물꼬걱정 하는 밤 만월 차오르듯 치자 꽃 하얗게 밤 지새고 감꽃 파랗게 열매 맺는 그리움 향한 꿈길 헤맨다 바쁘게 살았다 하지만, 반거들충이라니 챙긴 것이라곤 허름한 넝마 한 벌과 버리기 아까운 추억 한 다발 호연지기浩然之氣 키웠더니 절망 같은 삶 휘청이며 풍성함 있을까 기웃거린다 쉼표 찍을 사이 없이 일손에 매달린 일거리로 가득한 좁은 공간 그리움이라는 향수가 반가운 손님으로 찾아와 비몽사몽 날 흔들어 깨운다 시인은 못내 별 헤아리다 잠을 놓친다.

서설瑞雪

유난히 춥다 삼한사온 잊은 지 이미 오래, 칼바람 움츠림이 시간을 따라잡지 못해 계절 또한 미동이다 야윈 떨켜 흐느끼는 나무의 살갗 줄기 휑한 바람이 지나는 동안 봄 기다리는 인내 잦게 내리는 눈雪 차라리 서설이라 하자 지저분한 것 감추고 투명하고 맑은 호사만 있을 것 같은 예감 밋밋함 묵상에 잠겨 있다 잠깬 조무래기들의 고함소리 귀청을 여지없이 찢는다 뿌드득뿌드득 처녀설處女雪 밟는다.

까치(신항만에서)

더불어 살아온 자연의 숙명 종족보존의 본능과 가족계획 준비의 반란이다 문명이 인간 사치라며 아슬아슬한 전봇대 위에 방 한 칸 마련하고 얽매여 사는 동물의 세계 허접한 잡동사니 물어다 다독다독 이음새 박고 어긋어긋 철사동가리로 짜깁기 해 놓았더니 영역 빼앗은 이 누구인가 분통한 절규 애가 끓은다 반가움 기별하는 길조 어쩌다 인간의 문명 앞에 이 모양 이 꼴 되었는지 마치 내가 까치인 양 왼 종일 내내 슬퍼만 진다.

맨드라미

아조아주 옛날 나 어릴 적 숨바꼭질할 때 장독대 뒤에 숨어 도톰한 꽃 두어 송이 보았지 닭 볏처럼 우뚝 세우고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호들갑을 빌어 부채춤 살짝 추던 꽃이라 정화수 한 사발 장독대에 올려놓고 뭇 세월 자식 잘 돼라 지극정성 비손하시더니 치성致誠에 타오르는 어머니 사랑 눈 가는 곳곳에 그 사랑 베어 곱디곱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