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제 5집 73

해운대 백사장에서

해운대 바닷가를 거닐다보면 탁 트인 세상 만나보게 된다 고달픈 몸 담겨진 가슴에서 무거운 짐 하나씩 풀려나고 너울대는 물결 속에서는 소망의 빛줄기 건져 올린다 ​ 깔때기 파라솔아래 죽살이 하는 아우성소리, 떼 절로 밀려드는 포말 부딪치는 소리, ​ 나는 잠시 벤치에 앉아 하이든의 *천지창조를 듣는다 ​ *하이든이 만든 오라토리오

2020 제 5집 2021.01.17

새벽에 일어나 세면을 한다안경을 닦고손톱과 발톱을 손질한다짧은 숨 풀며45도 각도로 수구려롱 톤 (Long_tone)을 해본다 옷가지를 챙기고양말을 챙겨집 밖을 향해 갈 몸을 감싼다그러고 우두커니 쉬는 날을 생각한다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으니쉴 날은 없는 것인가고생을 신처럼 아끼면서한숨도 아껴야 하는 건지 잠시 망자처럼 생각해 보니과연 쉼은 오는 걸까

2020 제 5집 2021.01.17

문방사보 5

벼루에 붓이 접근한다 붓 낚싯대가 먹물의 중심을 흔든다 출렁이면서 미끼를 무는 강을 제빨리 화선지 위로 끌어 올린다 강이 팔딱팔딱 낚인다 강을 자꾸자꾸 낚아 올리는 뾰족뾰족한 입들 스킨십 엔도르핀이 솟는다 *도파민의 척도가 쑥 오른다 먹물 한 점 한 점 여백을 향해 혼을 심어본다 떨리는 손가락 사이로 싱싱한 예술이 태어난다 한 폭의 족자에 묵향이 짙다 *호르몬

2020 제 5집 2021.01.17

해운대 동백섬에서

해무가 푸른 가지 휘어잡고 멋들어진 춤 추어대면 청솔가지 사이로 바람 안기는 흔들림을 본다 누리마루 휘늘어진 노송이나 굽어보이는 백사장 동백은 결코 외롭지가 않다 해무 피어 바다가 몽환적이고 어둠 내린 불빛 휘황찬란한 모습이면 서로가 조화 이루며 조명에 나서지 않겠는가 내가 보는 환상의 도시는 눈조리개의 카메라 세상이라 조석에 따라 신기루 현상은 세상과 사뭇 다름이 아닌가 아름다움, 한낱 추억으로 남을 수 있고 숨 쉴 적 일탈과 만끽으로도 남겠다

2020 제 5집 2021.01.17

바람 같은 인생

어제 지났던 바람이 내일도 찾아올 것인지 아니면 잦을 런지 그 바람 다시 찾아와 오늘에 안간힘 쓰고 있다 켜켜론 머리칼 쥐어짜듯 흔들며 춤사위하는 그 바람 세월을 일일이 헤아리며 지난 날 그려 회한하는 것일까 높은 곳에 오르다보면 드세게 불어대고 낮은 곳에 머물면 잔잔히 부는 바람 이따금씩 잊어버리는 바람 또다시 찾이올 바람 자꾸만 쇠하여진 바람 언젠가 소멸할 바람

2020 제 5집 2021.01.17

지난 세월

세월 삼킨 무언의 삶에 저항 한 번 해 보게나 무엇을 얻고자 동동걸음 치며 억척스레 살아왔는지 흘려버린 유년의 흔적 그 궤적 이어 멜 수가 없네 귀 대고 한 번 들어 보게나 그대가 말한 흔적들이 토막토막 소리로 들려올 것이네 힘겹고 머나먼 길 좋아서 좋은 갑다 싫어서 싫은 갑다 사람들 하나둘씩 떠나가고 뒷자리 스쳐간 인연들만 어지간히 붙잡고 늘어지네

2020 제 5집 2021.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