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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기도-

한나의 기도- 엘가나 엘가나 엘가나 여인이 날 부러워 한다 가슴 아린 세월 또 어디 있으랴 애절하게 기도하는 여인의 절규가 *야훼 전(前)을 숨가쁘게 내다른다 나의 주여! 여인의 고통 돌아보소서 풍랑에 한숨짓는 소리 드높아 높은 파도가 됩니다 시린 하늘 어디에선가 눈 없는 씨 날아와 내 뱃속 훑고 뿌리 내리게 하시던지 분지르지 않는 검은 꽃술로 하얀 꽃송이가 되어 피게 하던지 그 이름 부르며 또 부르며 사무엘 사무엘 사무엘 뱃속에 뛰어 놀게만 할 수 있다면 이러듯 슬퍼하지 않으리라 마음이 슬퍼도 포도주 한 사발 내게 둔 적 없고 괴로워도 독주를 찾지 않았으니 긍휼을 기다림에 취하게 될 뿐이라 평안을 채우소서 여인에게 기쁨 주소서 거친 세상이라도 원하시기 전 이 꽃 주님께 바쳐 드리리다 *야훼=하나님의 이름

갈대 5

까끌까끌 날리는 사무치는 연(緣) 붙잡고어딘가에 마음 둘 곳 없는한낱 허울이라는 것을 알기에탈색한 겨울 죽도록 잡아 비틀며갈꽃 허공을 박차고 오른다포효하는 야성의 성난 파도처럼길섶에서 하늘거리면흔들릴망정 꺾이지 않는다고서걱이며 비틀대는 칼춤을 춘다안달하며 속삭이는 바람결먼 산을 기웃거리는 동안산이 안개를 벗아나 침묵하고그 안개 천천히 길을 연다나상의 춤사위 휘젓는백포 갈대의 시율내 마음 깊은 곳에서고고한 환희로 치솟는다

묵향(墨香) 2019.10.26

추억 속에 봄비-

추억 속에 봄비- 옛 연인의 방문처럼 봄비가 흘러내린다 갈라지고 메마른 세상에다 툭툭 창을 두드리며... 구차한 몸 봄 기다리는 마음 조급 하다만 빗속 피할 길 없어 하늘이 준 선물이라 여기자 추억으로 더듬어 내리려 할 때도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취했다 쉼표 같은 포근한 비 땜에 여가를 즐기려는 포근한 맘 주마등 같이 스치는 추억을 맛보며 옛 거리 걸어보고 싶어서라 하자 주저리주저리 너덜너덜한 것들 지난 기억을 다 일깨워 봄비에 다 씻겨 내려보자 추억의 소리 어찌 출렁이는 아픔뿐이랴 아득한 즐거움일 뿐 이랴 내 귀에 찰찰 빗소리가 넘친다 마음속 깊이 촉촉하게 젖는다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들

어느 시간이었을까 삶의 소중함 깨닫게 되었을 때 불어오는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길가에 피어 있는 작은 꽃 작은 돌멩이 하나까지도 다 삶의 의미가 된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의미는 발길에 부딪힌 작은 이웃들 슬픈 이 기쁜 이 외로운 이 미운 이 착한 이 가난한 이..... 이 모두는 내 삶의 이유들이다 소중한 이웃이 없다면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랑하고 미워하고 울고 웃고 괴로워할 수 있었기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 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나 소중한 삶의 시간들은 너무도 짧다 아름다움의 순간 순간이 시간속에 묻혀가는 것 안타까움에 가슴을 졸인다 더 사랑하며 웃어야지 더 크게 울고 괴로워해야지 귀한 삶의 시간들이 소홀히 지나쳐가지 않도록

아리수

아리수- 순한 백합꽃 어깨에 함박 감싸시더니 아리수 잠재우고 저 멀리 어이 보내시나 꿈을 접은 섭 섭 새 네 잎 클로버 찾지 못 하고 오수에 힘 잃으니 꾸벅꾸벅 좌절하는 화평 살랑거리는 물결 위에서도 반짝이는 듯 감춰진 길 못 찾아 자맥질하는 섭 섭 새 해 저물고 여비 없어 황혼에 물든 옷 저리나 입고도 싶겠다 인맥의 줄이 끊어져 세상의 줄이 끊어져 홀로 아리랑에 춤추는 슬픔의 노래, 나의 인생 노래할 수는 없나요

벌새처럼-

굽이진 산 넘고 강 건너 품어대는 한숨 만지작만지작 나즈막한 속삭임처럼 조용한 볕에 물든 너의 모습 나의 온 몸이 흉내를 낸다 바람 불면 흔들리고 비 오면 젖는 것이 어찌 내 혼자랄 수 있겠냐만 흔적없이 증발 하려는 이슬처럼 붉게 물든 노을곁에 선 내 모습이 만만치 않는 너의 집요로 인해 삶의 키를 다시금 사로잡는다 어둠이 들판을 물들이고 나의 마음은 고독에 물들어 정녕 포기할 수 없는 단맛의 기다림 너를 보듯 취해 버리고 해우하는 낯가림 나의 생애 쌓이는 응어리 매무새 곱게 다듬고 그 모습 속에서 남은 날들을 헤아린다

손자와 함께

여름은 쏟아지는 물소리로 시작이 된다 지루하고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당장이라도 시원한 계곡을 찾아 물속에라도 뛰어들고 싶어진다 작년엔 손자 녀석 땜에 여름을 찾지 못했다 쥐면 다칠까 놓으면 사라질까 나들이하기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치일 걸 생각하니 바다는 엄두를 못 내다가 이제는 좀 성장하였고 할배할매를 옆에 두고 즐거워할 줄 아는 세상맛을 느끼는 것 같아 작정하듯 날을 잡았다 계곡을 찾는 마음 들떠서인가 녀석 웃는 모습이 자지러진다 쏟아지는 물소리에 주변은 소음조차 잠기고 싫증도 나겠다만 이놈 여전히 신나게 물장구를 친다 산천어가 있을까 기대하다가 급한 마음에 잡는 게 가재하고 송사리다 흐르는 물에서 건진 수박은 어쩐지 당도가 느껴진다 물놀이를 마친 녀석 배가 많이 고팠을까 수박껍질이 오이 ..

녹차밭 5

서편제 판소리 한 대목 어허이 폭포수 득음정지나 산 나이테 두른 차밭 골 오르면 차 꽃 튀밥처럼 터지는 지절 이슬 같은 꽃 사과가 대롱대롱 초가을 색 품으며 익어가고 척박한 차밭 일구다가 청산에 묻힌 두 봉 어르신의 고단했던 삶을 생각한다 호위무사 삼나무 편백나무 좌우 빽빽하게 들어서 잇고 숲길 아래 물봉선화는 촌색시 수줍은 치맛자락처럼 연분홍빛 봄소식 같다 시 동행이 된 시인들과 녹차 아이스크림 나눠보며 나도 가고 너도 가야 할 연애사 이별노래 부르며 녹차 축제장 터 지나는데 현란한 가위춤 엿장수 가위질 막춤이 즐겁고 누더기 각설이 음담패설 익살 좋은 넉두리춤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불러 앉힌다 돌아오던 길 다관에 차를 우리며 쪽진 머리 달빛 차 따라주는 여인의 가을 향기 황차의 남도가 노을빛으로 은은하다

묵향(墨香) 2019.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