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별(그대의 향기) 79

가는 봄처럼

무아지경 파란 하늘을 정신없이 바라다보면 풀어놓은 물감이 채색이 된 느낌입니다덧없는 세월 머리에 떠올리고추억들 쑥덕거려 다가선다면나는 어느새 몽상에 잠길 것입니다지리한 추위 속에서미처 떨구지 못했던 나뭇닢들이새 이파리에 밀려살포시 떨어지곤 했지요가슴 설레도록 아름다운옛 연인의 속삭임달려가는 봄이 지고 있습니다. *푸른별*

운전하는 시인

승객들의 수다소리가 승강구를 따라썰물처럼 쑥 쑥 빠지고나면버스안은 텅 빈 고요가 남아그리움 피우는 창가에 나를 세운다 오랜 날 몸에 익어버린 운전돌아갈 수 없는 날들이시리도록 드높은 하늘에다인생의 삶을 새겨놓는다 꼭 눌린 푸념들가슴깊이 잊혀질 뻔한 말더러는 시 되어 반짝거리게 되고 나면피곤에 지친 밤하늘은 마치나를 잘 어울린 듯한시인으로 만들곤 한다. *푸른별*

눈 오는 날

하얗게 퍼부은 폭설이사람이나 차량 그리고시간마저도모든 동작을 멈추게 만든다멈춤은 간혹 휴식이지만바쁜 습성에 길들여진 나에게는쉬는날인들 예외일순 없다하루를 열심히 살아야할 시간내리는 눈이 달갑지 않지만유년시절을 떠 올리고 나면어느새 동심의 꽃망울 핀다허허로운 웃음 지으며눈사람도 만들고눈싸움도 하게된다면추억은 나를 아이로 만든다삶이 힘들고 어려울수록추억은 내 곁에서떠날 줄 모른다 *도서출판*

봄편지

맵살스런 찬바람에도 한낮의 햇살만은어차피 봄날의 것이더라 노오란 개나리가삐악거리는 병아리떼처럼뾰족뾰족 얼굴을 내밀 때쯤하얗게 피는 매화도 시샘하는 바람에 떨려 꽃이파리 날고뒤란에는 벚꽃이 망울망울새하얀 젖가슴 풀어헤치더라목련꽃 봉오리보고심히 감당치 못한 산수유가덩달아서 봄으로 익는다 누구의 편지들일까누구에게 보낸 시詩 들일까봄의 편지와 시詩 가연서도 달지 않은 채주위를 두루두루 에워싸기 시작한다 봄 속에 내 발을내 마음을 빠트린다 *푸른별*

꿈꾸는 시인

밝아오는 회동 수원지에나를 유혹하듯 육신을 세운다부풀은 꿈 설친 잠에 비틀거릴 때쯤몽롱해진 생각들을 강물에 푸니짙게 깔리어 드리운 물안개가나의 몸을 칭칭 에두른다물에 빠진 별들은별무리가 되어 꿈으로 빛나고낮달은 나무에 걸터앉아그 꿈 헤아린다강 뚝 너머 참새 떼푸른 그리움으로 아침을 쪼면나는, 달리는 발통 소리 내며 시인의 꿈을 줍는다 *푸른별*

동심의 꿈

한번쯤 꿈을 꾸어본다긴 단잠에서 깨어 베란다 창문을 열면순백의 눈 속에 파묻혀 있는어릴 쩍 시절이 아닐 찌라도아파트 마당을 덮을 수 있을 만큼의눈이라도 왔으면 하고 소망을 가져본다하얀 능선위로 내려온 하늘을 닮아쪽빛보다 더 푸르른 장산을 덮을은빛의 설원은 아닐지라도그저 눈사람 하나 만들 만한 눈이내렸으면 하는 마음뿐이다겨울이 길었던 유년 시절에는그래도 이따금씩 많은 눈들이 내렸었다산도 들도 내 마음도 온통 새하얀 눈으로 덮었었지순백의 세상에서조잘조잘 참새 떼가 눈 헤집어 아침을 쪼면강아지들도 신이 나는 듯 날뛰며 설쳐댔다왠지 포근하고 넉넉한 마음 이었지달빛 질펀한 티 없고 깨끗한 하얀 선물처럼눈 오는 날의 동네 안팎은온통 정담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푸른별*